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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Jul 23. 2023

뚜벅이 여행을 좋아해

남해 뚜벅이 여행 1일 차


바다가 예쁘기로 유명한 남쪽의 도시에 휴가를 왔다. 운전을 못하는 나는 어딜 가든 버스 또 버스다. 오늘도 터미널에 도착해서 숙소로 가는 군내 버스 표를 끊어두고 40분 남은 탑승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터미널은 여름인데도 에어컨을 틀지 않아서 하나 있는 터미널 안 카페에 들어왔다. 사실 에어컨을 틀 필요가 없어 보인다.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다.

대합실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 몇 명, 매표소와 안내소 직원, 매점과 식당 주인들 정도. 나의 이런저런 질문에 친절히 응대해 주셨던 터미널 매점 할머니는 지금 선풍기 바람 앞에서 느릿느릿 부채질을 하며 졸고 계시다.


내가 있는 이곳 카페에도 손님은 한 테이블 정도. 캐나다인지로 유학을 준비하는 엄마와 두 딸이 연신 어려운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카페는 프랜차이즈 요거트 전문점인데, 사장님이 빈티지 물건 수집을 좋아하시는지 이국적인 그릇과 소품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 요즘 커피를 줄이고 있어서 블루베리 요거트 스무디를 시켰더니 요거트 아이스크림이 잔뜩 올려져 나와서 횡재했다. 아까 터미널 근처 시장 횟집에서 먹은 회덮밥이 난이도가 좀 있어서 많이 먹질 못했는데 나머지 배를 채울 수 있겠다. (가시가 많고 껍질이 살아있는 회가 잔뜩 썰려 올라가 있는 회덮밥이었다. 경기도 촌사람한테는 까끌거리는 식감이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한산한 남부 바닷가의 터미널, 졸고 있는 매점 할머니, 이상하고 친절한 카페, 유학을 준비하는 모녀들. 이질적인 풍경들이 한데 모여 교차하는 시간. 버스를 타고 다니기에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이런 장면 속에 있을 수 있어서, 나는 버스 여행을, 뚜벅이 여행을 좋아한다. 이번 여행, 시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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