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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Jul 25. 2023

몽돌에 앉아

남해 뚜벅이 여행 3일 차


아침 일곱 시. 커튼을 걷으니 모처럼 하늘이 보였다. 남해 여행 3일 차이자 마지막 날 겨우 만난 하늘.  하늘은 못 참지. 눈곱도 떼지 않고 바람막이 점퍼를 걸친 채 밖으로 나왔다. 숙소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펼쳐지는 몽돌 바닷가. 이 바다가 있어서 식당도 편의점도 없고 관광지에서도 떨어져 있는 이 심심한 숙소를 선택했다.


옅은 구름이 여전히 마을 위를 덮고는 있지만 이 정도 햇살이나마 느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어제 비에 젖은 샌들을 벗어서 햇살 아래 내려놓고 몽돌 해안에 앉았다. 징그러운 바다 벌레가 돌아다니긴 하지만. 얘네들을 보는 것조차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몽돌 해안의 파도소리는 마치 음악 같다. 쏴- 촤르르. 쏴- 촤르르르.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서로 부딪혀 반질반질해진 것들이 내는 소리. 이 순한 바다를 바라보자니 나도 덩달아 순해지는 기분이다. 곱디 고운 것들아. 언제까지나 이 마을을 지켜줘.


이제 조식을 먹으러 갈 시간이다. 식빵과 토마토, 요거트, 시리얼, 삶은 계란과 핸드드립 커피. 뚜벅이 여행자에게 조식은 소중하다. 어제저녁도 멀리 편의점까지 걸어 나가 사온 컵라면에 삼각김밥으로 때웠으니까.

아침을 먹고 나면 짐을 챙겨 터미널로 나가는 군내 버스를 타야 할 것이다. 이곳에 올 때 탔던 것과 같은 버스를. 오던 길에 창밖으로 보는 바다 경치가 환상적이었는데 이번에는 반대편 좌석에 앉아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풍경이다.


동글동글 몽돌 바다야 안녕. 눈 마주치면 짧은 꼬리를 흔들던 아기 흑염소들아 안녕. 왜 비싸고 티브이도 없는 숙소에서 묵냐던 슈퍼집 할머니도 안녕. 다음에 이곳에 다시 오더라도 모든 게 그대로일 순 없겠지만 그래도 잘 지내요. 나도 돌아가서 잘 지낼게요.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힘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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