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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Aug 31. 2023

느리게 질문하면서 가는 길


<소설보다 여름(2023)>을 읽고 있다. 여름이 다 지나가 버린 것만 같은 8월의 마지막 날. 모처럼 해가 났고, 내가 앉아있는 빵집의 정원에서는 예초기 소리가 가득하다. 예초기를 돌릴 때 나는 풀 냄새는 보통의 풀 냄새와 다르다. 나는 왜 다를까를 생각하면서 풀의 죽음을 떠올렸다. 아닌가, 뿌리가 살아있으면 죽은 게 아닌가. 하지만 무언가 잘려나갔다는 것만으로 죽음과 가까울 수도 있는 게다.


책을 냈다거나 글을 쓴다고 하니 비슷한 질문을 몇 번 듣게 되었다. “소설은 안 쓰세요?”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들을 질문이 아닌 걸 들은 것처럼 큰일 난 기분이 든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쓸 생각이 없고, 쓸 능력도 안되는데 이 질문을 받아버린 바람에 졸지에 나는 ‘소설도 못쓰는 작가’가 되어버린 것 같다.


사실은 써본 적이 있다. 달랑 한 문단 정도였나. 어쩔 수 없이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 내가 처한 적이 있는 상황으로 시작하였는데 그 점이 무척 오글거렸다. 나에 대한 에세이는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써대면서 소설은 왜 안되는지 모를 일이다.


에세이와 소설의 거리는 실제와 허구의 차이라고 할 만큼의 먼 거리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도, 허구도 결국 인간의(저자의) 경험치 영역(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점에서 그렇게 멀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왜 에세이는 되고 소설은 안되나 나 자신에게 질문해 보지만 애써 답을 찾지는 않는다. 전에 말한 적이 있는데, 어차피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의 문제다.


다시 <소설보다 여름>으로 돌아와서, 나는 예초기에 잘려나간 풀 냄새와, 수영장*의 물보라 냄새를 함께 맡으며 첫 번째 소설 읽기를 끝냈다. 자기만의 속도로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멋졌다는 감상. 나도 나의 속도로 가고 있는지 물어보게 된다. 뭘 읽는 동안이든 사는 동안이든 질문을 하도 많이 해서 나는 읽는 속도도 그렇고 뭐든지 대체로 느리다. 중력이 강한 우주에 사는 것 같다.(‘중력이 강할수록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것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했다.)

느리게 질문하면서 가는 길, 전보다는 이 속도와 이 길이 만족스러워지는 중이다. 답을 영영 못 찾을지라도 나는 평생 질문을 포기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 내가 이제는 싫지 않다.



*<소설보다 여름(2023)>에 실린 첫 번째 소설은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공현진)>이다. 수영장에 다니는 두 사람의 이야기라 읽는 내내 수영장 냄새가 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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