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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Sep 01. 2023

밀크티와 소금빵 그리고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하여


내가 자주 가는 동네 카페는 수요일, 목요일에 쉰다. 나는 하필이면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카페에 가고 싶은 때가 많아서 생각만큼 자주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자주 가는 카페의 상위 목록에 이곳을 늘 올려놓는다.


사랑받아 잘 자란 식물들과 카페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큐레이션 된 책들, 가격이 적당한 빵들, 주인의 손맛이 들어간 차와 커피메뉴들이 자꾸만 이곳을 찾게 한다. 인테리어는 물론 손님과 주인의 거리까지, 어떤 것에도 과함이 없는 점이 마음에 든다. 특히 낮 열두 시 반에 나오는 소금빵은 이 집을 찾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갓 나온 소금빵의 향긋함과 고소함,

바삭함은 그 어떤 점심 식사보다 값지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아침부터 잡초를 한바탕 잘라준 뒤 목욕재계를 하고 카페에 왔다. 아직은 열한 시 반. 에어컨을 켜지 않고 열어둔 창문으로 상쾌한 바람이 들어온다. 나는 언제나처럼 커다란 쿠션이 있는 창가 쪽 소파 자리에 앉아 포스기가 켜질 때까지 책을 읽었다.(사장님이 오늘 출근이 늦으셨나 보다.)


어제에 이어 소설보다 여름(2023)을 읽다가, 사장님이 준비가 되신 듯해 밀크티 한 잔을 결제하고 다시 책을 펼쳤다. 조금 기다리니 유럽의 카페가 부럽지 않을 고급스러운 주전자와 찻잔이 쟁반에 올려져 나왔다. 이곳의 밀크티는 티백이 아닌, 사장님이 직접 블렌딩 한 잎차를 뜨거운 우유에 우려 섬세한 맛이 난다. 나는 몇 분 기다린 뒤 적당히 우려진 밀크티를 잔에 따라 홀짝이며 소금빵이 구워져 나오는 시간을 기다렸다.


다시 책에 코를 박고 있는 내 테이블 위로 소금빵 한 접시가 올라왔다. 사 먹으려고 했는데, 사장님께서 갓 나온 소금빵을 재빠르게 서비스로 주신 것. 이곳 사장님은 말씀도 별로 없으시고 손님과의 거리 두기를 썩 잘하셔서 내가 맘 편히 드나들 수 있게 된 곳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끔 불쑥 서비스로 직접 만든 사과차나 갓 나온 빵의 맛을 보라며 테이블 위에 올려주시곤 한다. 내가 동네 단골손님이어서일까, 아니면 모든 손님들에게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서비스를 유지하시는 걸까 궁금하지만 나 또한 적당한 거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어떤 것도 더 여쭤보진 않는다. 그저 나도 몇십 년 후, 혹은 십몇년 후 나이를 먹으면 저런 모습의 어른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오늘은 손님이 없다. 사장님은 오늘치 빵 굽기를 끝내신 뒤 화분 속 식물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신다. 나는 책을 보다 말고 메모장을 열어 글을 쓴다. 밀크티와 소금빵의 향과 맛, 그리고 그만큼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가 주는 따뜻함에 대해서.


밀크티와 소금빵,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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