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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Sep 22. 2023

필요시 상비약

짧아도 괜찮아


# <최소한의 삶 최선의 삶>(제롬 브리요)이라는 책을 읽다가 중도 포기했다. 이렇게 어려운 책은 처음이다.


# 그동안 쭉 날씨가 안 좋아서, 해가 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어떤 날보다 화려하게 화창했던 오늘, 나는 어쩐지 조금 우울해졌다. 설명할 수 없는 우울은 설명하지 않게 된 것이 약간의 변화 지점이다.


# 응원하는 야구선수가 홈런 혹은 시원한 득점권 안타를 치지 못하고 있다. 나보다는 선수 본인이 가장 답답하겠지만 나는 도통 팔리지 않는 것만 같은 내 책을 보듯 자꾸만 마음이 조여든다.


# 지인이 전자책으로 출간한 책을 읽으면서, 나의 글을 읽는 다른 이들의 심정이 이러할까 생각해 본다. 부드럽게 잘 쓰인 글을 몽글한 기분으로 읽다가도 결국엔 뭔가 봐서는 안될 것 같은 거울 속 어둠과 마주하는 느낌. 조금 더 마음이 화창한 날에 다시 이어서 봐야 할 것 같다.


# 외로움이라는 화두를 내 것으로 가져가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홀로 서고 싶다. 하지만 문득 돌아보니 내 주위에 아무 존재도 느껴지지 않을 때, 고독하고 위태로운 섬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다시 안절부절 못하는 열두 살 아이가 되고 만다. 하지만 오늘은 울지 않았다. 다만 할 일을 했다.


# ‘필요시’라고 쓰여있는 상비약을 먹어야겠다. 오랜만이다.


(라고 쓰고 약 대신 산책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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