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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Sep 24. 2023

잘 살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지


내가 잘 살고 있는지, 혹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가 sns의 ‘좋아요’ 밖에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이 연재의 제목처럼 ‘잘할 필요 없고, 그런대로 잘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가끔은 그게 마음처럼 안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처럼 가을이 깊고, 하늘이 높고, 마음이 달뜨는 때에는 내려놓는 일이 조금 힘들다. 나도 저 하늘처럼 사람들에게 예쁨 받고, 저 햇살처럼 포근하게 내리쬐는 사람이고 싶다.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여전히 나는 사람‘들’의 품이 그리운 모양이다. 이제 혼자인 게 익숙한 줄 알았는데.


이러다가 곧 괜찮아질 것을 안다. 곧 집에서 나가기 싫어지는 계절이 올 테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침잠하는 시기가 올 테니. 눈이 살포시 덮인 들판처럼 모두가 수평으로 나란히 가라앉는 계절. 누구나 공평하게 춥고 (우리 집은 조금 더 많이 춥겠지만) 누구나 공평하게 어둠을 일찍 맞이하는 계절이 올 테니.


차린 것 없이 부끄러운 명절을 맞이하는 것 같은 이런 상태는 곧 물러가리라. 다시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이불을 덮고 평안해지리라. 차린 것 없는 밥상조차 감사하게 받으며 무사히 한 해를 살아냈다는 사실에 안도하리라.


그날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 미리 감사를 준비해야겠다. 이런 날, 이렇게 맑고 화창하고 좋은 날 살아있어서 감사하다고. 선물 같은 날이었다고. 그리고, 역시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sns 속 ‘좋아요’로는 알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나를 키웠고 그 속에서 여전히 나는 자라고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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