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비가 내린다
일이 너무 하기 싫어서 일단 글을 쓰기로 했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여름 내내 괴롭히더니 가을까지 이어지는 비. 덕분에 농사도 꽃도 다 포기하고 온통 풀밭이 된 마당을 하염없이 바라만 본다.
마당이 너무 좋았던 때가 있었다. 해가 나면 싱그러워 좋았고 비가 오면 밭에 물을 안 줘도 돼서 좋았다. 잡초 속 벌레들마저 사랑스러웠던 때가 있었다. 시골집 4년 차, 이제 해볼 건 다 해봤다는 생각이 든다. 이사 오고 첫 해, 손님도 제법 많이 치르고 주말이든 평일이든 숯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 이제는 캠핑을 가도 고기를 굽지 않는다. 꽃도 심지 않은지 오래다. 화원에 색색의 국화가 가득 들어오는데 그저 남의 일 같다.
모든 것은 쌍방이다. 날씨 탓만을 하기엔 나도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당을 대하는 마음이 이전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당의 효용이 없느냐라도 하면 섭섭해할 이들이 있다. 나의 마당에는 내가 오기 이전부터 살던 수많은 생명들이 있으니까. 내가 관리를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열일하는 개체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조용히 드나드는 고양이들은 물론이고 참새, 딱새, 직박구리, 박새, 개구리, 두꺼비, 나비, 벌, 개미, 귀뚜라미, 방아깨비, 사마귀, 지렁이, 지긋지긋한 곱등이까지... 인간의 기준으로 어떤 녀석들은 해로울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됐거나 다들 열심히 살아간다. 특히 꿀벌은 요즘 멸종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들에게 살 곳과 꿀을 제공하고 있으니 나의 마당도 제법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비도 어딘가에서 쓰임이 있으리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날씨를 대하는 마음이 한없이 얕아서 매일 일희일비하는 나지만, 생각을 조금 달리해보는 연습도 필요한 것 같다. (인간에게 기후 위기를 깨닫게 해주는 비라고 생각해 보는 것도...)
빗방울이 조금 가늘어졌다. 이제 나도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컴퓨터 앞으로 일을 하러 가야겠다. 마당에서 열일하는 녀석들을 본받아 나도 나의 하루치 몫을 해야지. 자,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