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달씨 Oct 12. 2023

필 꽃들은 피고 살 것들은 살아간다


이제 낮이면 평상으로 하나 가득 햇살이 들어차는 계절이다. 안방으로 들어오는 아침 해의 기울기도 한껏 낮아졌다. 햇살은 많이 들어오지만 그만큼 집은 추워졌다. 마당에 나가 햇살 아래 있는 것이 집 안에 있는 것보다 따뜻한 수준이다.

아침이면 히터를 켤까 말까 고민하며 거실과 방마다 달린 창문을 연다. 밤동안 식은 마당의 공기가 훅 하고 들어온다. 커피를 한 잔 내리는 동안 고민을 마치고 결국 히터를 켠다. 건조해지는 것은 싫지만 아침 내내 웅크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의 아침 식사를 한바탕 챙겨주고 나면 남편이 일어날 차례다. 남편은 추위를 많이 타지만 아침이면 꼭 커피를 내려 마당으로 나간다. 한참이나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멍을 때리는 것이 그의 루틴이다. 나도 아침이면 무조건 현관문을 열고 나가 새 공기를 맡거나 맨손체조 따위를 할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어떤 것도 의무감에 하고 싶지는 않다.


요즘 마당에는 구절초와 국화가 한창이다. 구절초가 먼저 피었고, 국화는 봉오리 상태인데 곧 터지기 직전의 팝콘알 같은 느낌이라 두근두근하다. 꽃을 좋아하는 이웃집 언니가 심어준 메리골드도 만개한 지 오래다.

집 입구에는 작년에 길에서 씨를 받아 대충 뿌려놓은 코스모스가 발아를 성공했는지 처음으로 분홍색., 자주색 꽃을 피웠다. 주차를 할 때마다 차 옆면에 쓸려서 거슬리지만 이번 가을만 살 테니 내버려 두기로 했다. 잡초만 간신히 제거할 뿐 어떤 관리도 못하고 있는데도 때 되면 이렇게 필 꽃은 피고 살 것들은 살아간다. 내내 미안한 마음이다.



작년에 우리 마당에 머물렀던 고양이들은 이제 보이지 않고 올 해는 새로운 녀석들이 드나든다. 몸집이 작고 눈이 초록인 엄마 고양이는 새끼를 애지중지 제법 잘 돌본다. 저 작은 몸으로 어떻게 아기를 낳고 기를까 자꾸 염려되어 눈에 밟히는 녀석이다. 또 한 놈은 온몸이 새카맣고 발만 하얀 양말이 인데 조용히 밥만 먹고 사라지곤 한다. 귀여운 발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데. 경계심이 크고 외골수 스타일인 회색 줄무늬 녀석은 제법 큰 덩치를 잘도 숨기고, 순식간에 마당을 가로지른다.

이 중에 몇 놈이나 올 겨울을 날 수 있을지. 조만간 큰 상자를 마련해 비닐문이 달린 집을 만들어줄 때가 오고 있다.


더위와 지난한 비가 물러가고, 짧은 가을이 마당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이 잠시의, 혹은 마지막 풍요를 누리느라 분주한 꽃들, 새들, 동물들. 겨울이 곧 닥칠 것을 알지만 씩씩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 아름답고 그래서 슬프고 그래서 더 예쁘다.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안아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 일하자,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