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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Oct 31. 2023

살아있는 것들은 그리 고요하지 않다


햇살이 좋아서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몇백 미터 걸으면 나오는,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그 앞 벤치에 걸터앉아 이 글을 쓴다.

머리가 무겁고 몽롱한 게 감기 때문인지, 감기약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어제와 오늘 많은 작업을 했다. 아프면 오히려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절박함이 나를 떠미는 걸까.

 

집 주변으로는 여러 갈래의 산책로가 있지만 온종일 혼자 지내는 나는 일부러 사람을 볼 수 있는 이곳 학교앞 길로 향한다. 인사하고 지내는 이웃도 거의 없고, 나를 알아볼 이도 없지만 이 길에서 나도 여러 사람들의 덩어리로 보이고 싶다.


오후 1시 40분. 수업이 끝난 저학년 아이들과,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과, 앳된 얼굴의 태권도 선생님들이 뒤섞여 조용한 마을에 한차례 소란이 인다. 10분여간의 소요가 지나가면 운동장에서 뛰노는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다시 잠잠해지는 학교 앞 풍경. 나는 가을이 무르익어 노랗고 빨간 나무들 아래에서 다시 혼자가 되었다. 얼굴로 비치는 햇살은 따갑고, 아이의 6교시 수업이 끝나려면 이삼십 분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


뒹구는 낙엽들의 바스락 소리, 버스 정류장의 버스 도착 알림 소리.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 소리. 어떤 학년은 체육시간인지 남자선생님이 연신 소리를 지른다. 10월의 마지막날인데도 반팔 차림의 아이들이 돌아다닌다. 나 혼자 겨울 니트에 털조끼를 잘도 껴입고 나왔다. 언제나, 밖은 생각보다 춥지 않다. 나를 뺀 어떤 곳도 그리 고요하지만은 않다.


살아있는 것들은 그리 고요하지 않다. 그것을 확인하는 산책이다. 나에게 없는 활기를 조금 빌리러 이렇게 산책을 나온다. 아침 찬 공기에 움추러든 꽃잎이 낮 햇살을 받으며 활짝 펼쳐지듯, 나도 굽은 등줄기를 조금 펼쳐보련다.


정수리가 따스하다.

아무래도 털 조끼는 벗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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