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이면 건강한 곳에 마음을 쏟고 싶다
오늘은 6월 4일의 아침, 밤사이 대통령이 바뀌고(혹은 채워지고?) 날씨는 파랗게 맑다. 아닌 밤중에 자다가 맞은 내란 사태였으니 자다가 대통령이 바뀌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어제 잠자리에 들었더랬지. 성에는 안 차는 결과지만 그조차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정말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의 일상이란 게 뭐였더라?
나 또한 비일상의 상반기를 보냈다. 2월에 갑작스레 자궁근종 진단을 받고, 병원 몇 군데를 돌아다니고, 수술방식과 병원 등 여러 가지 의사결정을 하느라 무척 피곤했다. 진료 예약, 검사 예약, 수술 예약, 수술, 수술 후 회복기간을 보내다 보니 상반기가 다 갔다. 실은 어디 아픈 데도 없이, 그저 소변이 잦고 운동이나 식단 관리를 해도 배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이상해서, 그리고 주변에 자궁/난소 관련 수술을 했다는 지인이 많기에(왜 우리 여성들에게 이런 병이 흔하게 발생하는가! 우리의 자궁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연구가 필요하다!) 혹시나 해서 검사를 받아본 것뿐이었다. 그런데 의사 말이 커다란 근종이 배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해서 처음엔 무척 놀랐었다. 그리고는 인생 첫 전신마취를 동반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게 무서웠고. 그다음에는 돈과 이런저런 걱정에 골치 아팠다. 막상 수술에 임박해서는 전부다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별거 아니라는 주문을 자꾸 외웠다.) 수술과 회복 과정 모두 무난하게 잘 치렀다. 나란 사람 워낙 모범생이라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걷고 관리를 잘하니 회복도 빠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 수술 후 한 달이 되었다고 완전한 일상으로 돌아가자마자 복부가 당기고 수술부위가 찌릿한 불편을 겪어야 했다.) 가장 걱정했던, 수술 전후 그리고 회복기간에 작업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문제는, 다행인지 뭔지 일이 들어와 주지 않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의 상반기는 오로지 자궁근종 이슈와 함께였던 것이다.
이제는 심하게 무리하지 않는 정도의 관리만 할 뿐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작업이 많지 않다 보니 자꾸 마음이 들뜨고 나의 일상이 뭐였더라,라는 멍한 상태가 된다. 아이와 1박 2일 짧은 여행도 가고, 캠핑도 다녀왔는데 마음이 가라앉질 않는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밖으로 나가고 싶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는데 여러 고민 끝에 일단은 나가지 않고 할 일을 찾기로 했다. 집에 있으면 자꾸만 집안일을 하게 되기 때문에 더더욱 나가고 싶은 것인데 집안일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묵혀놓은 출간 계획 혹은 고민을 심화시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만드는 데에는 돈이 들기 때문에 묵혀놓고 있었던 것인데, 어쨌든 인쇄를 들어가기 전까지는 돈이 안 드니까 우선 진행시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무튼 나는 비어있던 일상에 무언가를 부어야 한다. 마음 쏟을 곳이 필요하다. 기왕이면 건강한 곳에 마음을 쏟고 싶다.
병원에서 주는 수술 후 안내문에 보면, 일상으로 회복한 뒤에 더 우울감이 찾아올 수 있다고 했다. 이제는 그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마치 먼 여행을 떠났다가 현실로 돌아온 뒤의 상태와도 비슷할까. 대단히 비일상적인 상황에서 비일상적인 수준의 에너지를 쏟다가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면 무언가 허탈하기도 하고, 나의 일상은 여전히 그대로라는 사실이 좌절(?)스럽기도 할 것이다. 또는 이런 난리를(?) 겪고 났는데도 기대한 만큼 나의 일상이 달라지거나 더 나아지지 않음에 배신감도 느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근종을 떼어내듯 똑 잘라낼 수 없으니 한동안 나라를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세력들과 공존해야 할 것이다. 생각보다 더 나쁠지도 모른다. 우리의 일상은 언제든지 근종이나 낭종이나 혹이나 종양이나 바이러스나 그에 준하는 어떤 세력들에 의해 흔들리고 멈춰지고 아프고 훼손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취약하다. 그렇기에 더욱 소중한지도 모르겠다. 수술 시즌이 지나고 회복된 지금 만난 하루하루가 그만큼 아깝고 소중해서, 그걸 알기에 자꾸 안달하는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고생했으니 좀 쉬고, 진짜로 충분히 쉬며 자신을 돌봐주고, 그다음에는 건강한 곳에 마음을 쏟기로 하자. 쇼핑이나 식탐이나 숏폼 같은 곳에 말고 나의 도파민을 건강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곳. 운동도 좋고 작은 모임도 좋을 것이다. 또는 미뤄뒀던 한 가지 작은 계획 정도를 구체화해 보는 것도 좋겠다. 나는 오늘 귀찮지만 미뤄둔 빨랫감 정리와 화장실 청소를 좀 한 뒤에 가능하다면 진짜로 멈춰둔 다음 책 편집을 이어갈까 한다. 돈이 없어 인쇄를 못하더라도 일단은 진행시키는 것으로. ‘외출은 나의 힘‘이지만 오늘은 이렇게 보내자구.
어젯밤 바람이 미세먼지를 쓸어가고 4층 통창으로 6월의 햇살을 머금은 파란 하늘이 가득하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같았던 지난 12월 이후로 쭉 못 쉬었을 우리들에게 따뜻한 일상 회복의 기운이 내리쬐길 바란다. 그리고 이제는 제자리로 돌아가 푹 쉬고 아팠던 마음 보듬고 진짜 자기 목소리를 되찾기를. 모두들 너무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