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만 되면 왜 이렇게 센치해질까

낙엽이 가르쳐준 시간의 의미

by 수담


가을만 되면 이상하게 마음이 간질간질해집니다. 특별히 슬픈 일이 없는데도 괜히 울적해지고, 지나간 시간들이 자꾸 떠오르고, 오래된 사람이 그리워지더라고요. 왜 유독 가을만 되면 이렇게 센치해지는 걸까요? 한 수강생이 강연 후에 물었어요. "선생님, 가을이면 저도 모르게 옛날 생각이 나는데, 이게 정상인가요?"


스무 살 가을이 떠오릅니다. 대학 캠퍼스 은행나무 아래를 혼자 걷고 있었어요.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던 날이었죠. 그때 문득 깨달았어요. "아, 시간이 정말 흐르는구나." 봄에 새파랗던 잎들이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는 걸 보니까, 시간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여름까지만 해도 시간은 그냥 추상적인 개념이었는데, 가을은 시간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계절이었어요. 그게 왠지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내 젊음도 저 낙엽처럼 언젠가 떨어지겠구나 싶었거든요.


단풍이 절정인 수목원을 찾았던 날이 있어요. 아름답긴 한데 묘하게 쓸쓸하더라고요. 옆에 있던 친구가 물었어요. "단풍이 왜 아름다운 줄 아니?"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나무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거거든. 저게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은 작별 인사야."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어요. 가을의 아름다움은 완성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소멸의 아름다움이었던 거예요. 봄꽃이 아름다운 건 시작의 설렘 때문이지만, 단풍이 아름다운 건 끝의 애틋함 때문이더라고요. 그래서 가을은 봄보다 더 깊이 마음을 파고드는 것 같아요.


철학자들은 가을을 '성찰의 계절'이라고 했어요. 자연이 한 해를 정리하듯, 우리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절이라는 거죠. 봄과 여름에는 앞만 보고 달렸다면, 가을은 뒤를 돌아보게 만들어요. "올해는 뭘 했나, 내가 원하던 대로 살았나" 이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거든요. 그러다 보면 후회도 생기고, 아쉬움도 남고, 그리움도 커지는 거죠.


요즘도 가을이면 산책을 자주 나갑니다. 어제는 한강변을 걷다가 벤치에 앉았어요.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하늘은 높고, 억새가 하얗게 흔들리는 걸 보고 있으니까 문득 지난 시간이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이십 대의 나, 삼십 대의 나, 사십 대의 나. 그 시절엔 왜 그렇게 조급했을까, 왜 그렇게 불안했을까. 가을은 이렇게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요. 그런데 이상한 건 그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거예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게 쓸쓸하긴 해도, 그 쓸쓸함 속에 위로가 있더라고요.


가을이 센치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절정에 이르고 또 떠나가는 계절이니까요. 완성과 소멸이 공존하는 순간, 아름다움과 슬픔이 섞이는 시간. 그 복잡한 감정을 우리는 '센치하다'는 말로 표현하는 거죠. 봄처럼 들뜨지도 않고, 여름처럼 뜨겁지도 않고, 겨울처럼 차갑지도 않은. 딱 적당히 서늘하고 적당히 쓸쓸한 감정 말이에요.


그러니 가을이면 괜히 옛 생각이 나고, 지나간 사람이 그립고, 오래된 노래가 듣고 싶어지는 게 이상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죠. 가을은 우리에게 돌아보라고, 정리하라고, 그리고 따뜻하게 작별하라고 말하는 계절이니까요. 오늘도 당신이 센치하다면, 그냥 그 감정에 조용히 몸을 맡겨보세요. 가을이 주는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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