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고등학생이던 제게 이 노래는 하나의 계시 같았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들으며 가슴 한편이 저려오는 느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 노래가 제 마음 깊은 곳의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 시절 우리에게 겨울바다는 특별했습니다. 여름바다가 축제와 들뜸의 공간이라면, 겨울바다는 성찰과 고독의 무대였죠. 아무도 없는 텅 빈 해변, 차가운 바람, 거칠게 부서지는 파도. 그 모든 것이 10대의 예민한 감수성에는 말할 수 없이 낭만적으로 느껴졌어요.
"너에게 있던 모든 괴로움들은 파도에 던져버려 잊어버리고"
고등학생에게 무슨 큰 괴로움이 있었겠나 싶지만, 그때는 정말 모든 것이 괴로웠습니다. 성적, 진로, 친구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근본적인 혼란. 이런 것들이 18세 소년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어요.
그런 마음을 안고 겨울바다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가보지는 못했지만, 노래 속 그 풍경은 제 마음속에서 또렷하게 그려졌어요. 파도에 발을 적시며 서 있는 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먼 수평선을 바라보는 나. 그 상상 속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깊이 있는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허탈한 마음으로 하늘을 보라 너무나 아름다운 곳을"
허탈함마저 아름답게 느껴지던 시절이었어요. 그 시절의 우리는 슬픔도, 외로움도, 심지어 절망조차도 어떤 미학적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겨울바다의 고독감은 그런 우리의 감성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죠.
시간은 정말 허락 없이 빨리 지나갔네요. 그때의 고등학생은 이제 50대 중년이 되었습니다. 겨울바다에 대한 로망도, 허탈한 마음으로 하늘을 보는 미학도, 모두 추억 속 일이 되어버렸어요.
하지만 신기한 것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는 것입니다. 30여 년이 지났지만, 첫 소절이 흘러나오는 순간 18세 소년의 마음이 다시 뛰기 시작해요.
지금은 겨울바다에 대한 환상이 많이 사라졌어요. 추운 것은 그냥 춥고, 외로운 것은 그냥 외로울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실제로 겨울바다에 가보니 상상했던 것만큼 낭만적이지도 않았고, 고독이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때의 감정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순수한 감수성이야말로 그 시절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던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미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그 마음이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었던 거죠.
수평선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50대가 된 지금도 바다를 보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다만 그 감동의 결이 조금 달라졌을 뿐입니다. 그때는 나 자신의 감정에 도취되었다면, 지금은 자연 자체의 웅장함에 경외감을 느껴요.
가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습니다. 그 시절의 감성은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것을요.
그래도 이 노래만큼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이 멜로디를 들으면 가슴 한편이 저려오고, 여전히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입니다.
어쩌면 진짜 겨울바다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억 속에서만 완벽하게 아름다운, 그 달콤한 고독의 바다 말이에요. 그리고 그 바다는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다시 우리 앞에 펼쳐지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