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빠른 길과 여유로운 길 사이에서
퇴근길, 지하철역 앞에서 멈춘다.
오른쪽은 대로변. 차들이 빽빽하고, 사람들이 바쁘게 걷고, 신호등마다 멈춰야 하지만 10분이면 집에 도착한다. 왼쪽은 골목길. 조용한 주택가를 가로질러 작은 공원을 지나는 길. 20분이 걸리지만 나무들이 있고, 고양이가 있고, 생각할 시간이 있다.
오늘은 어느 길로 갈까.
빠른 길을 선택하면 효율적이다. 10분 일찍 집에 도착해서 할 수 있는 게 많다. 저녁을 먹고, 쉬고, 내일을 준비하고. 시간은 금이니까. 낭비할 수 없으니까.
여유로운 길을 선택하면 비효율적이다. 10분을 더 걷는 동안 '생산적인' 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냥 걷고, 보고, 생각하고, 느낄 뿐이다. 하지만 집에 도착했을 때 기분이 다르다. 조금 더 가벼워진 느낌.
현대인의 삶은 효율의 연속이다.
빠르게 씻고, 빠르게 먹고, 빠르게 일하고, 빠르게 이동한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절약한 그 시간으로 뭘 하는가? 대부분은 또 다른 효율적인 일을 한다. 유튜브를 빠르게 보거나, SNS를 빠르게 확인하거나.
그렇게 절약한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작가 밀란 쿤데라는 『느림』에서 이렇게 말했다. "속도는 망각의 형식이다." 빠르게 지나가면 기억하지 못한다. 빠른 길로 집에 가면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유로운 길을 걷다가 본 골목길 고양이, 담벼락에 핀 꽃, 석양빛에 물든 공원. 이런 건 기억에 남는다. 비효율적이지만 삶을 채우는 순간들.
중요한 건 선택의 자유다.
항상 빠른 길만 갈 필요도 없고, 항상 여유로운 길만 갈 수도 없다. 급할 땐 빠른 길을, 여유가 있을 땐 느린 길을. 그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걸 기억하는 것.
오늘은 왼쪽, 골목길로 간다.
20분 후 집에 도착한다. 10분을 '낭비'했지만, 저녁 산책을 '선물'받았다. 손해 본 것 같지 않다.
새해의 빛이 당신의 길을 비추고
좋은 기운이 언제나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 수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