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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달 Sep 23. 2022

보고서 리듬 만들기

보고서 얘기에 무슨 랩이야

랩의 근본은 라임(rhyme)이다. 국어로 '각운'으로 번역된다. 쉽게 말해 비슷한 발음으로 들리는 단어들을 규칙적으로 배열해 만든 가사다. 모음(ㅏ,ㅔ,ㅣ,ㅗ,ㅜ)이 동일하거나 비슷하면 랩 특유의 은율감이 느껴진다.


한국어 라임의 괴물이라 불리는 뮤지션  '화나(FANA)'의 REDSUN 가사 한마디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구태의연함에 눈떠"를 예시로 들어보자.


보통 4/4 박(쿵짝 쿵짝) 기준으로 '짝'에 해당하는 2, 4박에 라임을 배치하므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구태의연함에 눈떠

   쿵           짝         쿵        짝

짝에 해당되는 '날 때부터'와 '함에 눈 떠'가 4음절 라임이 된다. 4음절을 보면  'ㅏ-ㅐ(ㅔ)-ㅜ-ㅓ'로 동일한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단함)


라임이 자연스럽게 들어간 랩은 고개가 앞뒤로 절로 끄덕여지는 은율감이란게 극대화되는데 이런 자연스러운 리듬감이 비단 시나 음악에만 있는 건 아니다.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딱히 틀린 내용은 없는데 뭔가 잘 읽히지 않고 짜깁기 한 느낌을 준다면, 어구(語句, 말의 마디나 구절, phrase)에 신경 써보자. 


상사의 고개가 앞뒤로 끄덕끄덕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읽히면서, 글의 완성도도 갖출 수 있을까. 


1. 대구(對句)에 신경 쓰자

대구법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처럼 비슷하거나 동일한 문장 구조로 짝을 맞춰 늘어놓는 표현법이다.(네이버 사전) 같은 범주로 묶이는 내용들을 병렬할 때 좋다. 

가령 취미, 액티비티 중개 플랫폼 개시 전 연령별 마케팅을 달리 하려 할 때,


 ㅇ 10대는 SNS를 주로 사용하므로 온라인 이벤트를 실시

 ㅇ 영어회화 등 취업에 도움이 되는 취미 레슨을 홍보

 ㅇ 직장인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므로 보다 폭넓은 액티비티를 홍보

 ㅇ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로 40대 층을 공략


식으로 작성하면 대략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는 알겠으나 중구난방으로 쓰여 정리가 안된다. 이 내용을 '연령' '하나의 예시' '어디에 도움되는지'로 어구를 맞춰 아래처럼 작성해본다.


 ㅇ 10대는 봉사활동 등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홍보

 ㅇ 20대는 영어회화 등 취업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 관련 레슨을 홍보

 ㅇ 30대는 서핑, 콜프 등 색다른 경험을 주는 동적인 액티비티 위주로 홍보

 ㅇ 40대는 꽃꽂이 등 문화교류에 적합한 정적인 레슨 위주로 홍보


각 꼭지별로 추가해야 할 사항을 생략해야 할 수도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전달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앞서 다뤘던 MECE와는 다르다. MECE는 분석을 위해 논리적인 엄밀성을 갖추려는 목적으로 활용하는 글쓰기 접근법이다. 지금 소개하는 대구법을 활용한 문장 구성은 눈에 잘 들어오고 명확하게 읽히도록 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다. 물론 이렇게 깔끔하게 작성된 보고서는 논리적인 안정성도 뒤따라 온다.


2. 글의 층, 겹(layer)

딱 맞는 표현이 없어 그나마 비슷한 뉘앙스를 주는 층, 겹으로 소개한다. 같은 범주에 묶일 이야기들을 할 때는 전제하는 조건, 범위나 깊이가 큰 차이를 보여선 안된다는 말이다. 같은 위치에서 논해져야 할 것들이 아닌 것을 같은 범주에 넣으면 논리적 비약이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취미, 레슨 중개 플랫폼 성장 가능성을 아래처럼 썼다고 하자.

 ㅇ 구독 방식으로 비용 부담 줄여 다양한 연령층을 고객으로 확보 가능

 ㅇ 20,30대 중심으로 부는 취미 열풍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시장 참여

 ㅇ 유가 하락에 따른 경제활성화로 소비 시장 확대


마지막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거시적으로 접근했다. 앞의 두 요인과 층위가 다른 이야기라 차라리 삭제하는 게 글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또 일상생활에서 발굴하는 생활편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한 순회 간담회를 개최하려고 하는데, 추진배경을 '4차 산업혁명에 따른..'으로 시작한다던가 '국가차원의 혁신 창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거창한 수사보다는 내용과 어울리는 깊이의 배경 설명이 더 설득력 있는 셈이다. 마치 이제 막 힙합에 입문한 랩퍼의 첫 곡에서 '나의 헤이터(hater)들에게 말해'라는 가사가 나온다면 갸우뚱 거리는 것과 마찬가지 느낌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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