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달 Feb 02. 2022

보고서 대본 처럼 쓰기

그놈의 보고서

나름 보고서충이라 자칭하는 수달, 그놈의 보고서 많이도 써보고 까여도 봤는데 여전히 어렵다. 워딩이 좋아야 되는지, 목차를 잘 짜야 되는지, 내용이 자세해야 되는지, 아니면 반대로 내용이 잘 읽히도록 쉽고 짧아야 하는지... 천차만별인 가이드라인 앞에서 매번 한숨만 나온다. 그러다 '보고' 잘한다 소문난 과장님을 모시게 되면서, 정확하게는 유심히 관찰하면서 실마리를 어느 정도 풀게 됐으니 소개해본다.


내가 쓴 거랑 별 차이도 없어 보이는 구만ㅜ

수달이 꽤나 고민해서 작성한 보고서를 들이밀면 과장님은 곧잘 틀을 바꾸고 내용을 첨삭했다.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 내가 고민해서 쓴 워딩이 처참히 줄 그어지고 별반 차이도 없어 보이는 내용들이 수정되는 상황의 자괴감을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수정된 보고서를 들고 함께 실장님 보고를 가보면 알게 된다. (대개 실장 보고는 담당 과장이 함) 족집게 과외처럼 어찌나 깔끔하게 들리는지 모른다. 또 듣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보고를 잘하는지 부럽고 궁금했던 수달. 처음엔 단순히 업무 숙지가 되어 있다고 여겼다. 곰곰이 생각하면 개별 업무는 담당자들이 자세하고 깊게 아는 경우가 많고, 세세한 정보에 대해서는 담당자에게 과장이 일일이 묻기도 하니까 단순히 업무 숙지의 차이로 비롯된 건 아닌 것 같다.


보고서를 대본처럼

당연한 소리 같은 비결은 보고 한다 생각하며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마치 대본을 쓰듯이. 수달처럼 많은 보고자들이 보고서 작성과 보고 행위를 별개로 여긴다. 보고받는 자가 '보기(to see)' 편하게 이쁘고, 깔끔하게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만 신경 쓰다 보면, 보고하는 자가 '보고 하기(to reporting)'에는 어색한 구성이 될 수 있는 것


과장님의 첨삭이 대단한 건 거의 없다. 내용은 다 비슷비슷하다. 그게 그거 인 것 같은데, 과장님은 문장의 순서를 바꾸거나, 단어를 바꾸거나, 논리를 추가하셨다. 처음엔 "그냥 본인이 쓰지 왜 날 시킨대?"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몇 번을 경험하다 보니 내용이 틀려서 수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보고 스타일에 맞게 보고서를 수정하기 위해 지시를 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주제가 정해지면 어떻게 보고 할지 시뮬레이션하면서 보고서를 그에 맞춰 가는 식으로 수달 보고서를 수정하셨던 거다. 정해진 틀이 있어서 그 틀에 맞추기 위한 단어와 논리를 집어넣는 게 아니라. 시작부터 어떤 이유로 이 보고를 하게 되었는지, 그래서 뭐에 대해 주로 논의할 것인지, 그 내용의 구체적인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마치 시나리오를 보고서라는 형식에 담아내는 느낌.


그렇게 이해하고 보니, 과장님이 갑자기 왜 이 목차를 빼고, 이 목차를 넣었는지, 문장의 순서를 뒤바꾸셨는지 이해가 됐다. 동일한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사람은 자신만의 화법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만의 대본에 어색한 부분을 재배치하고, 수정을 해오셨던 것이다.


그 이후로 수달의 시선도 바꼈다. 보고서를 테이블에 놓고 어떻게 전달을 할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수정하고 있다. 보고서에 담기는 핵심 내용은 다 비슷비슷하다. 그 주제에 대해 고민해보고 자료를 찾아본 사람이라면 말이다. 잘된 보고서와 별로인 보고서는 "보고"라는 행위와 합쳐질 때만 구분 가능한 영역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전 11화 보고서 줄거리 만들어 쓰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