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달 Aug 22. 2022

보고서에 고민한 흔적 담기

깔끔한 정리보다 엉성한 고민의 흔적이 중요한 이유

보고서는 타인(특히 상사)을 위해 존재한다는 태생을 상기하며 아래 소개하는 보고서 작성 접근법을 보자. 둘 모두 큰 방향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어느 접근법이 나을까


상사가 사안을 파악하는 시간을 줄여주는 보고서 vs 상사가 내릴 수 있는 선택지를 보여주는 보고서


경험상 후자가 소위  '먹힌다.'


타 기관 연구원에서 작성된 두쪽 남짓한 기술동향 자료를 분석해 우리 기관에 적용할 만한지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 있다. IT 쪽이라 서버니 DB니 단어부터 생소해 진도를 거의 못 빼고, 관련 자료를 검색해 붙여 넣는 식으로 작성하다 보니 그저 깔끔하게 '정리'하는 데 치중했다. 해당 프로젝트가 흐지부지 되면서 초안 보고 후 최종보고서 작성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초안 보고부터 상사의 반응이 유쾌하지 않았다.


또 타기관에서 입안하려는 법안이 근무기관 소관 법안과 유사하거나 충돌 우려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 어떤 사안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검토해보란 지시를 받은 적도 있다. 소관 업무 전반을 아우르지 못했던 탓에 유사 조항을 비교하는 표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더 큰 시야로 어떤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제대로 작성하지 못했더. 이후 국 과장님 판단을 받아쓰는 정도로 보고서 작성을 하면서 애를 먹은 적도 있다.


또 하나의 경험은 건축 소재 관련 보고서 작성을 했을 때다. 마찬가지로 관련 지식이 전무했던 터라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앞서 소개한 경험보다 2년 남짓 뒤라서 였을까(서당개 3년) 이번엔 자료수집과 정리에만 그치지 않고 나름의 판단을 담았다. 건축 소재별 특성과 장단을 분류하고, 판단기준을 예산, 파급효과 정도로 세운 뒤 예산을 고려하면 A안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B 안이 바람직하다는 식으로 작성했다. 그 보고서는 기관장까지 보고되면서 일단락됐는데, 무리 없이 진행됐다.


두 사례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검토, 분석, 계획 보고서는 후자의 접근법이 실무적으로 더 유용하다. 사안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해서 판단 내리기 부담스럽다고 되물을 수 있다. 그래도 후자가 더 낫다. 내(실무자) 선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판단을 내려보는 게 필요하다.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판단하는 고민의 흔적이 보고서에 담겨있어야 한다는 말. 얼토당토 하지 않은 판단은 어차피 과장급 선에서 피드백이 올 테니까. 조직 안에서 일한다면 얻어갈 빡빡한 보고체계가 주는 장점 중 하나다. 


판단을 내리는데 까지 가지 안(못)하고 자료 양이나 디테일이 좋은 보고서보다 10~20%라도 실무자의 판단이 들어간 엉성한 보고서가 더 바람직할 때가 많다. 요약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보고서는 상사가 사안을 판단할 수 있는 양질의 자료로 시간은 줄여줄 수 있지만 판단의 몫을 여전히 상사에게 맡기게 된다. 내용 파악 넘어선 보고서는 상사의 판단을 열어주는 창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상사 입장에서는 더 반길수 밖에 없다. 엉성한 판단이 결론적으로 반영되지 않아 자료 정리만 한 보고서와 당장의 결과는 같더라도 말이다. 첫 피드백 이후 고민의 흔적이 들어간 보고서는 엄연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전 12화 보고서 대본 처럼 쓰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