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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Nov 10. 2020

나는 선택받을 수 있는 부모인가?

페인트를 읽고

아이들이 필요한 나라

 2019년 우리나라 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당 0.9명. OECD 37개국 중 꼴찌다. 굳이 출산율 저하의 원인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결혼과 동시에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던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있음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출산율 감소에도 불구하고 버려지는 아이나 그로 인해 죽어가는 아이가 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인구 감소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지만 육아는 개인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국가는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려내야 하지만 그것을 받쳐주는 육아 환경이 보장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모순된 상황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아이는 그 누구도 자신의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면 자신을 버릴 것이 뻔한 부모를 선택해 태어날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아이들에게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부모를 선택하고 싶어 할까?


 이 책은 부모를 선택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책에서 설명하듯 부모를 면접하여 자신의 미래를 쓰는 아이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부모를 선택하는 아이들

"부모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부모를 면접하는 시대,

내 손으로 색칠하는 미래.


 이 책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이고, NC센터로 불리는 기관에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NC센터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으로 부모가 없는 아이들(국가의 아이들로 불림)을 돌봐주고 그들에게 최상의 부모를 찾아주는 곳이다. 지금의 보육원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NC센터의 아이들은 자신이 부모를 면접하여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을 받아야 하는 지금의 보육원 아이들과는 차이가 있다.


 책 제목인 페인트는 parent's interview로 NC의 아이들이 부모 면접을 부르는 은어로 사용하는 말이다.


 주인공인 '주노 301'은 페인트엔 관심이 없는 아이다. 자신을 낳은 부모도 책임지지 않는 자신을 책임져 줄 완벽한 부모란 존재할 수 없다 생각한 것이다. 이런 주노 301이 하나와 해오름이라는 젊은 부부와의 페인트를 시작하면서 이야기도 시작된다.


 주노 301, 이름에 숫자라니 낯설기만 하다. 마치 수인 번호 하나이름에 새겨 넣은 것 같다. 사실 이곳의 아이들은 기관에 들어오는 달을 기준으로 이름이 정해진다. 제누는 1월에 들어온 남자아이라는 뜻이고, 여자 아이는 제니가 된다. 그래서 달 뒤에 따라오는 숫자가 아이의 정확한 이름이 되는 것이다. 만약에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하여 기관을 나가게 되면 아이들은 정식 이름을 갖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페인트를 통해 숫자가 없는 정식 이름을 갖고자 한다. 그것은 정식 이름 외에 자신에게 부모가 생겼다는 걸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니까.


 아이들은 가디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한다. 가디언은 NC내에서는 부모와 같은 존재다. 아이들에게는 가디로 불리는 이들은 NC의 아이들이 최상의 부모를 만날 수 있도록 아이들의 모든 것을 분석하고 프리 포스터(면접을 신청한 부모)로 불리는 부모들을 잘 조사하여 아이들과 연결시켜주는 일을 한다.


 그러나 제누 301은 언제나 프리 포스터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3차에 걸쳐 치러지는 면접에서 3차까지 간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센터장인 가디박(이곳은 가디언의 이름을 알 수 없고 성으로만 불린다)은 센터에서의 삶이 3년, 아니 정확히 2년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제누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곳의 아이들은 20살이 되면 센터를 나가야 하기에 그전에 부모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제누는 조급함도 없이 느긋하기만 하다. 제누 301이 뭔가 부족한 아이였다면 안타까움은 덜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제누 301은 신중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 그런 그가 겨우 15% 정도의 자격이 있는 부모와 사느니 차라리 센터를 나가 NC의 아이라는 낙인 속에 사는 삶을 선택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만족할 수 없는 부모와는 살고 싶지 않다는 이다.


 그랬던 제누 301이 하나와 해오름이라는 부부를 만나면서 가족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3차에 걸친 면접까지 하게 된다. 마치 그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연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센터장 박은 제누에게 그들은 부모로서 자격이 부족하다며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한다. 그런 센터장에게 제누는 세상 어떤 부모도 미리 완벽하게 준비된 것은 아니라며 만남을 계속한다.  


 3차에 걸친 면접이 끝나고 제누 301이 하나와 해오름 부부를 선택할 순간이 되었을 때 그는 하나와 해오름 부부를 선택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한다. 제누 301이 그들에게 보였던 관심을 생각하면 의외의 결과였다. 3차 면접 당시 제누는 하나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듣게 된다. 엄마의 대리 만족을 위해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살았던 하나의 과거를. 하나는 부모도 자식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말을 제누에게 전한다. 자식이 오롯이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 부모에 대한 배신이 아닌 기쁨으로 여기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독립이라면서 말이다. 부모라는 이름 안에 자식을 품고 언제까지 자신의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제누 301의 결정을 예측이라도 한 듯 준비한 선물을 전한다. 제누 301이 활짝 웃는 모습의 그림을.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은 어떤 기준으로 부모를 점수 매겼을지 궁금해졌다. 내가 프리 포스트가 되어 아이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선택받을 수 있는 부모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심란한 마음으로 나 자신을 들여다봤다. 하나가 말하는 엄마의 모습이 나의 모습을 닮아 마음이 아팠다. 나 역시 아이에게서 독립하지 못하고 아이를 품으려고만 하는 것은 아닌지, 아이의 생각을 존중한다면서 나의 생각대로 자라기를 바라는 건 아녔는지 반성을 했다.


 페인트는 청소년 소설이라지만 어른에게 필요한 책이었다. 부모를 위한 책이었다.


 거창하게 국가의 아이들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그들은 상처 받은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페인트는 더 신중해야 했다. 어쩌면 제누 301이 페인트를 거절했던 이유에 완벽하지 못한 부모로 인해 또다시 받게 될 상처를 배제하고 싶은 맘이 포함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세상의 차별에 맞서는 당당한 NC의 아이가 되려고 한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아이처럼 그는 부모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부모는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서로를 옥죄는 속박이 아닌 자유로움 속에서 매 순간을 즐기며 지내는 관계가 되어야 함을 알려준 책, 페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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