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빛구슬 Apr 23. 2021

결핍이 불러낸 말 열심히.

지금이 행복하다는 나의 친구들.

비대면이 아닌 얼굴 마주함

 일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코로나 이전의 삶은 아니다. 날씨 좋은 주말이면 조용한 카페에 앉아 봄날의 나른함에 빠져 고요한 잠길 위를 걷고도 싶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 다른 모습으로 흐른다. 지금의 나는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 커피를 주문하고 가까운 야외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예전의 여유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5인 이상의 사적 모임이 금지되었으니 남편과 단둘이 외출한 날에는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그런데 그까짓 게 뭐라고 쉽지가 않다. '혹시나'하는 불안감이 그 쉬운 걸 어렵게 만들고 있다. 타인에 대한 거리감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 거리감은 집단 면역이 형성될 때까지 나를 묶어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드는 날들이다. 봄은 왔으나 아지랑이처럼 나른하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봄이다.

 

 이런 무거운 일상에 모임 하나가 성사되었다. 타지에 사는 친구가 친정 엄마의 생신을 맞아 내려온다는 것이다. '잠깐 얼굴이라도 보자는데 거절은 예의가 아니지'라는 생각은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다. 모처럼의 만남에 마음이 설레었다. 일탈이 두려운 소심쟁이인 줄 알았던 나는 방탕을 꿈꾸는 자유인의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모임 날에 만난 이들은 목소리나 글자가 아닌 살아있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반가움에 코 끝이 찡했다. 촌스럽게 눈물까지 핑 돌았다. 해야 할 말이 많을 것 같아 수다 떨기 좋은 구석 자리를 잡았다. 마실 것과 먹을 것을 든든하게 준비하고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시작했다. 청문회를 하듯 돌아가며 서로의 일상을 묻고 답하는 식이었다.


 나는 3월 한 달간 바빴던 일들을 털어놓으며 연락이 뜸했던 이유를 변명했다. 나의 3월은 참으로 바빴다. 아들에게 클릭부터 다시 배워야겠다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전자책을 냈고, 공연과 문화를 알리기 위해 서포터스 활동에도 참여했다. 비록 온라인이긴 하지만 자기 계발을 한다는 미명하에 30년 만에 또다시 대학 신입생이 되는 경험도 했다. 3월의 시간은 쪼개고 쪼개서 만들어진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맞이한 4월은 3월이 완성해 준 뿌듯함과 결과물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


 3월의 촘촘했던 삶이 힘들기는 했어도 보람찼기에 그 삶을 함께 한 친구와 언니에게 강요했다. 한데 쉼 없는 나의 열변이 그들에겐 약장수의 사탕발림으로 들렸던 걸까. 그들은 나에게 뭘 그렇게 힘들게 사냐며 자신들은 그렇게까진 살고 싶지 않다는 말로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니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내가 그들에게 글쓰기나 다른 활동을 강요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들은 가진 것이 많았다. 적어도 나의 눈에는 그랬다. 다른 사람에게 내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취미생활이 있었고, 자식 교육에 대한 노하우도 있었다. 가졌기에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고 SNS에 알리면 내가 발버둥치며 이루려는 일들을 쉽게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행동하지 않아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이 나의 눈에는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삶은 원하지 않았다. 굳이 행동하지 않아도 행복했기 때문이다.


 모임을 끝내고 집에 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여기저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자꾸 무엇인가를 하려는 나의 행동은 결핍이 불러온 자기 연민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흘러넘치는 결핍이 '열심히'라는 행동으로 발현되어 부족함을 채우고 있었다는 결론도달하게 되어 나의 삶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결핍은 꿈으로 가는 과정이래

 

 그러다 이런 우울에 답을 주는 영상 하나를 보았다. 인기 강사 김미경 선생님의 영상이었는데 그 영상은 내 우울감의 원인을 밝혀주고 결론까지 내려주었다. 나의 우울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희망하는 꿈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내가 지금의 상황과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해 버렸다면 나의 결핍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보다 나아지기를 바랐기에 꿈과 현실 사이에 결핍이라는 간격이 생겨난 것이다. 나의 결핍은 꿈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에 불과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영상 하나가 문제를 해결해주고 마음을 치유해 주었다.


 지금의 나로 만족하며 살 수 있다. 그런 나에게 뭐라 할 사람도 없고 부족한 삶이라고 손가락질할 사람도 없다. 하지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나를 꿈꾸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기를 갈망하고,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쓰려 애쓰며, 인스타에 사진 하나라도 더 올리려 몸부림친다. 꿈이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친구들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르듯 그들이 원하는 삶과 내가 꿈꾸는 삶은 다르다.



 그들에겐 가진 자의 여유가 있고, 나에겐 꿈을 향한 열정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 나무산책님의 <프랑스는 낭만적이지 않다>를 소개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