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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May 05. 2021

이번 제사에도 참석 못합니다

쉬는 날도 함께 할 수 없는 제사

 이번 제사도 참석 못합니다

 아프다. 마음이 아파 몸이 아픈 것인지, 몸이 아파 마음이 아픈 것인지 원인 모를 병명으로 아프다.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마치면 식탁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게 일상인데 그 과정을 생략하고 방으로 와 누워버렸다. 며칠 소화도 안 되고 몸이 무겁다. 날씨 탓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나의 진단으로 이건 분명 마음의 병이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성숙하지 못한 이놈의 인간 마음에 또 하나의 옹이가 생긴 것 같다. 며칠 전부터 한 분씩 형제들이 다녀간 후에 생겨난 현상이다.


 지난 토요일엔 둘째 아주버님과 형님이 다녀가시고 월요일엔 고모와 고모부가 다녀가셨다. 어버이날을 맞아 어머니를 뵈러 온 것도 있지만 토요일에 있는 아버님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전하기 위함도 있다. 그들의 불참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나 다 아는 그 이유 코로나 때문이다. 코로나로 가족 모임이 취소된 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데 이유 없이 심술이 났다. 마음속에서 '또'라는 말이 불쑥 올라와서다. 올해는 제사가 토요일에 있어 가족 모두가 모일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큰형님네만큼은 참석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백신 접종이 시작된 후에도 코로나의 확산이 줄지 않자 이렇듯 형제들은 날짜를 바꿔가며 집을 방문해 제사 불참 통보를 알리고 있다. 본인들로선 최선의 선택이고, 최고의 배려다. 각자 식구들을 위해서라는데 누가 반기를 들겠는가.


 당연한 일에 심술이 나는 건 '괜찮다'를 아무리 외쳐도 지배할 수 없는 감정 때문이다. 이성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도 감정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내 몸은 수긍을 하지 못한다. 둘째 형님네가 가져온 흰색 스티로폼 상자에 담긴 생선을 보는 것도 고모가 가져온 과일 상자 두 개가 너무 무거워 들기 힘든 것도 짜증이 났다. 과일은 싱싱하게 먹어야 하니 어서 냉장고에 넣으라는 어머님의 말씀까지 서운하게 들렸다. 알아서 할 일인데 굳이 말씀하신다 생각되었다. 마치 내가 과일로 평가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크고 좋은 과일을 선물한 고모네는 그만큼 귀한 대접을, 평상시 집에서 먹는 보통의 과일처럼 나는 그저 그런 평범한 대접을. 상자가 무거워 들기 힘들다는 말에 남편이 상자를 들고 와 냉장고에 과일들을 넣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내 나름의 시위였다. 지금 이 상황이 기분 나쁘다는 걸 알리고 싶었던 거다. 그날 이후로 계속 몸이 안 좋다.


 방안에 누워있는데 남편이 들어와 병의 증상을 물었다. 나는 엄살이라도 부리고 싶었는지 증상을 최대한 부풀려 말했다. 머리는 들고 있기가 힘들게 무겁고, 온몸은 늘어진 수양버들처럼 힘이 없다고 했다. 덧붙여 소화가 안 되는지 배까지 아프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사람 말 한마디를 내던지는데 그 말이 가관이다. 받고 싶지 않으니 가져가라고 "반사"라도 외치고 싶었다.


 "증상이 코로나네. 보건소에 가서 진단받아 봐. 괜히 옆에 사람 피해 주지 말고"

 "지금 당신은 부인이 아프다는데 다른 사람한테 피해 갈까 봐 그게 걱정이에요. 걱정하지 말아요. 이건 그런 병 아니니까. 내 병의 원인은 내가 아니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속상한 마음에 큰소리를 내버렸다. 그냥 "약은 안 먹어도 되겠냐. 씻고 일찍 자라" 했으면 조용히 마음을 다스렸을 텐데 눈치 없는 남편 덕에 분노만 일었다.


 코로나로 가족들의 집안 행사 참여가 사라지면서 행사의 규모도 줄었다. 육체적으로 힘이 덜 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알 수 없는 허전함이 자꾸 마음을 채운다. 일의 강도를 떠나 무언의 압박 같은 게 느껴진다. 결국은 부모와 함께 사는 며느리가 모든 집안 행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어쩌면 우리 세대가 시집살이란 말을 달고 산 마지막 세대가 될지 모른다. 앞으로 시집살이란 말은 역사 교과서에서나 찾게 될 말일 터이니. 고로 지금의 나의 말 한마디는 마지막 시집살이 대상이었던 며느리의 의미 있는 고백이 될 수도 있다.


'시집살이, 괜찮아도 여전히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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