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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Oct 19. 2019

이 놈의 감나무가 미쳤나?

올해는 감나무가 정상이어서 다행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면서 낮과의 일교차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낮에도 기온이 떨어지면 가을이 곧 겨울이 되는 마법이 일어나겠지요?

쌀쌀한 바람을 느끼며 흔들리는 마당의 감나무를 보면서 조용히 속으로 물어봅니다.

'어이, 감나무 씨 올해는 정상이네. 그런데 작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작년 우리 집 감나무는 정상이 아녔습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다산을 한 감나무는 대추나무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뭇가지는 축축 처지고, 어떤 가지는 부러지기까지 했으니까요. 다른 해엔 없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심지어 단감나무에서 떨감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가을이면 별다른 과일이 없어도 먹고 싶으면 언제든 따 먹을 수 있는 감이 있어 마음만은 풍성했습니다.

그런데 작년의 감나무는 기쁨보단 걱정을 먼저 안겨 주었습니다. 단감도 아니고 떨감이 그리 열렸으니 먹을 수도, 그렇다고 홍시가 될 때까지 남겨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어떤 방법들을 생각해 내셨는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선 그 감으로 곶감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이 되니 다산으로 괴로움을 주었던 감나무는 더 이상 골칫거리가 아녔습니다.

그런데 우리 식구들은 해결 방법 찾기에만 급급했지 앞으로 닥쳐올 곶감 만들기의 과정은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우리 집 감나무에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상품으로 팔기 위해 키우는 감들과 달리 그 높이가 높아 사다리가 없으면 감을 딸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감을 따면 아래서는 받아주는 사람 또한 있어야 하고요.


먹기 위해 한 두 개씩 따는 감과 달리 한 바구니, 두 바구니. 바구니채로 따는 감은 노동의 강도가 달랐습니다.


첫 주 토요일, 감을 따고 벗기는 일을 하면서 어머니, 나, 남편은 손이 떨리는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다음 날은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남편은 인터넷으로 감 깎는 기계를 주문했습니다.


둘째 주도 우리는 감을 깎았습니다. 남편은 기계로. 어머니와 나는 칼로.

5일은 직장에서. 2일은 집에서. 휴식이 없었습니다.


나는 욕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남이 기분 나쁘지 않게 찰지게 욕하는 사람을 보면, 분위기를 맞춰볼까 하여 따라 해보고도 싶지만, 어찌 되었건 입에서 나오지 않는 욕을 억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런데 작년 우리 집 감나무에겐 욕을 했습니다.

"이놈의 감나무가 미쳤나? 뭔 감을 이렇게 많이 열리게 해서 이 고생을 시켜"

그렇게 욕을 먹은 감나무가 올해는 정상이 되어 맛있는 단감을 내어 주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우리는 600개가 넘는 감을 깎았습니다.

그리고 처마 밑에 줄줄이 걸었지요. 곶감이 맛있게 될지 아닐지는 상관없었습니다. 그저 곶감 지옥에서 벗어난 것으로도 만족했으니까요.


다산의 기적을 보였던 감나무는 결국 가지치기라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정상의 모습으로 돌아와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감을 따 먹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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