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빛구슬 Jul 23. 2021

우리 집 7월은 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포도가 익어간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로 시작하는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에는 소중한 손님을 맞이하고자 하는 시인의 절절한 마음이 들어있다. 시인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면 두 손을 함빡 적셔도 좋다는 말로 자신의 강렬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시가 7월을 포도가 익어가는 계절로 부르짖지 않더라도 나 역시 7월에는 포도를 생각한다. 달콤한 향으로 코를 간질이며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는 우리 집 포도로 인해서다. 시인의 청포도와 달리 우리 집 포도는 초록의 싱싱함이 점점 빛을 잃고 나서야 달콤함을 입는 진보라빛 포도다. 초록이 완전히 그 빛을 잃어 보랏빛으로 물들다 새까만 옷을 입게 되면 비로소 포도 속에 근사한 맛이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소중한 손님이라도 맞이하려는 듯 두 손 가득 포도향을 적시며 포도를 딴다. 입안은 뱉지 못한 웃음이 한가득 안고서 말이다.


우리 집에 있는 많은 나무들 중 특히 유실수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별다른 손길을 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스스로 열매를 맺고 익어가는 부지런함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자연이 주는 당연한 일이라 치부할지 모르지만 그러기엔 그들의 수고가 너무 크다. 요즘은 마트나 시장에 가면 누구나 손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게 과일이다. 하지만 그런 과일에는 우리 집 과일에 있는 어떤 맛 하나가 빠져있다. '보는 맛'이라는 눈으로 먹는 맛이다. 시중의 과일은 입은 즐겁게 해 줄지는 몰라도 눈은 즐겁게 만들지 못한다.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다. 그게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길러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과일은 입맛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보는 맛 또한 중요하다는 걸 식물들을 키우면 배우고 있다.

작년 포도의 모습

작년에는 포도송이에 봉지를 씌워 주었다. 포도 농사를 짓는 분들을 따라 해 본 것이다. 반면 올해는 봉지를 씌우지 않았다. 작년과 비교하기 위해서다.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는 분들이야 그동안의 경험으로 올해도 작년처럼 봉지를 씌웠겠지만 우리는 한 해 한 해 실험을 통해 그 경험을 쌓아야 하니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지금까지의 진도를 봐서는 포도의 성장이 작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봉지를 씌우지 않으니 햇빛을 잘 받아 맛이 더 깊어질 거란 생각마저 든다. 


봉지 없이도 맛이 들어가는 포도를 보며 애써 봉지를 씌우는 이유가 뭘까 찾아보았더니 햇빛을 골고루 받게 하여 포도색을 고르게 하기 위함이고, 농약이 묻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했다. 달달한 포도 냄새라 퍼지는 것을 막아 벌레의 꼬임을 막기 위함도 있다 한다. 우리 집 포도는 판매를 할 것이 아니니 맛만 있으면 색이 고르지 않아도 상관없고 농약을 하지 않으니 봉지 또한 씌울 필요가 없다. 늘 지켜보고 있으니 새나 벌레가 꼬일 일도 없다.


여름부터 시작된 수확으로 매실청과 매실주, 자두주를 담그고, 며칠 전에는 블루베리를 따 블루베리 잼을 만들었다. 조금 있으면 7월의 포도도 따 먹을 수 있다. 작은 마당의 일이 고맙기 그지없다. 마당을 손질할 때마다 힘들다고 투덜거렸는데 자연은 늘 내가 들인 노력의 몇 배로 보답을 한다. 자연의 마음이란 게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조금만 보살펴줘도 무한히 베풀어주는 마음. 이런 자연을 두고 환경 문제를 얘기해야 한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다.

집에서 관상용처럼 기른 포도라 알알이 촘촘하지는 않지만 익으면 맛이 좋다.
작년에 가지를 자른 석류는 열매를 맺지 못하더니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열매 하나를 키워냈다.
블루베리를 냉동시키고 남은 것으로 쨈을 만들었다. 딸기처럼 씨가 씹히는 게 재미있다.


7월에 시인의 시가 우리 집으로 들어와 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로 만들어주었다. 더위에 지쳐 축축 늘어지다가도 하루하루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에 힘을 얻는다. 문득 바라본 하늘 아래서 튼실하게 익어가는 감이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너로구나.

앞으로 너를 지켜봐야겠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반찬을 사 먹고 싶어. 그런데 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