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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Oct 15. 2021

남편이라도 내 자식 험담은 싫어

딸을 만나러

침대에서 미적거릴 시간도 없이 일어났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멍 때리는 일인데 그 시간마저 사치스럽게 느껴져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어느새 문 앞에 놓인 짐들을 차에 싣느라 분주했다. 짐들을 옮기고 나면 샤워를 할 것인데 그 시간이 나의 세수 시간보다 빠르니 보조를 맞추려면 서둘러야 한다.


며칠 전 남편은 딸의 전화를 받았다. 집에 있는 전자레인지가 고장이 났다는 내용이였다. 밥을 직접 해 먹지 않고 포장밥을 사 먹는 처지라 전자레인지가 없으면 식사가 불편할 게 뻔한 일인데 어떻게 밥을 먹나 걱정스러웠다. 연휴가 시작되면서 시간이 여유로워 딸에게 다녀오기로 했다. 전자레인지를 새로 구입하고 가을 이불이며 반찬을 챙겼다. 이래저래 짐이 많아진 탓에 왕복 8~9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직접 운전해 가기로 했다. 운전은 나의 실력을 믿지 못한 남편이 도맡았다.


그렇게 나선 길을 반기기라도 하듯 설렘이 나와 동행해 주었다. 황금으로 물든 들판과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는 우리가 지나는 길을 여행길로 만들었고, 간간히 내리는 비는 운치를 더했다. 고속도로는 황금연휴가의 서막을 알리려는 듯 차들로 넘쳐났다. 그럼에도 여행길이라 생각하니 그마저도 좋았다. 휴게소도 코로나 이전의 생기가 돌았다. 나서길 잘했다. 정체 구간이 순서대로 차를 통과시키는 바람에 도착이 늦어졌지만 피곤함 같은 건 없었다. 추석 때 보지 못한 딸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딸의 집에 가까워지자 전화를 걸어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주문하라고 했다. 당일 걸음이 주는 조급함에 점심은 집에서 먹기로 한 것이다.


주문한 음식은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음식이 와 있어서 가져온 짐들을 한 곳에 밀쳐두고 식탁 앞에 앉아야 했다. 


'하~.' 

어쩌면 나와 남편은 점심으로 고기나 밥 종류의 정식 메뉴를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음식 앞에서 잠시 젓가락 드는 것을 머뭇거렸으니 말이다. 딸이 주문한 음식은 치킨과 떡볶이였다. 치킨은 평범한 후라이드가 아닌 치즈 가루를 두껍게 둘러 쓴 뿌링~치킨이었고, 떡볶이는 숯불 맛 나는 고기가 뭉텅이로 숭숭 들어간 떡볶이였다. 매콤한 떡볶이임에도 느끼함이 스멀거리는 게 희한했다. 휴게소에서 닭강정과 소떡을 먹고 온 나와 남편에겐 그리 구미가 당기는 조합이 아니었다. 특히 뿌링~치킨을 싫어하는 남편으로선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이쪽저쪽을 정처 없이 방황하던 젓가락이 금세 멈춰버렸지.


 "보쌈이라도 시키지 그랬어. 고기를 좀 먹지"

 "고기? 여기 들었잖아. 엄마는 맛이 없어? 난 맛있는데" 

 "엄마랑 아빠는 휴게소에서 먹은 게 있어 그런가 배가 안 고프네. 어서 먹어"


운전하느라 피곤했던 남편이 침대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사이 챙겨 온 반찬을 냉장고에 넣는데 내가 만든 반찬에 주책없이 군침이 돌았다. 막 담아온 배추김치에 따끈한 밥 한 그릇이면 딱인데 딸의 집에는 밥이 없다. 딸은 배추김치와 깍두기의 유혹에도 떡볶이를 택했고, 장조림과 바삭한 멸치 볶음의 짭조름함 앞에서도 뿌링~치킨에 손이 갔다. 딸의 식성이다. 우리와 다른 식성이다.


가끔 식성 문제로 딸과 실랑이가 붙은 적이 있다. 다른 엄마들은 자식들 입맛에 맞는 반찬을 해주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해서다. 나름 아이들 반찬에 신경을 쓴다고 했음에도 어른들 식성이 먼저였던 거 같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고 아이들에겐 먹어보고 판단하라는 식으로 먹기 싫다는 음식을 강요해 왔다. 그 강요가 입씨름으로 연결되어 내 아이들을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반찬투정이나 하는 아이들로 만들었다. 골고루도 아니고 어른들 식성이 먼저였기에 생긴 문제였다. 그 부분이 미안해 지금은 먹는 것만큼은 터치를 하지 않는데 그날 남편의 말 한마디가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00 이는 진짜 이기적인 거 같아. 부모 생각은 않고 자기 입맛만 생각해. 부모가 멀리서 왔으면 부모가 뭘 좋아할지 한번 정도는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냐? 자기가 먹고 싶은 거 주문하랬더니 정말로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주문해? 아무튼 자기밖에 모른다니까."


달리는 차 안에서였다. 차 안이라 참았다. 남편이 운전자라 참았다.


"자기가 먹고 싶은 거 시키라 해서 그런 건데 뭘 그렇게까지."

무심하게 던졌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감정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나도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낸다. 잘못도 지적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하는 말은 자식들을 사랑해서 하는 말이라 다 정당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남이 하는 말은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 남편의 말이라도 그렇다. 남편의 말이 딸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한 말이 아닐 텐데도 화가 났다. 내 자식은 나만 지적할 수 있다는 권한이라도 가진 사람마냥 화가 났다. 


딸은 잘못이 없었다. 그저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라고 해서 주문을 했고, 그것을 우리에게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좋아하지 않은 것을 먹으라고 강요했고 먹지 않으면 정성을 무시한다고 화를 냈다. 입맛까지 우리의 뜻대로 길들이려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입맛을 내세우니 어른 입맛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이기적이라 말한다. 잘못이 없는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서운해한 것이다.


남편은 딸에게 서운해했지만 서운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입력한 대로만 행동하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로봇이지. 딸이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이라 다행이다. 부모를 서운하게 만들 줄 아는 자아가 있어 다행이다.  


언젠가 딸이 말했다. 시시때때로 잔소리하는 엄마보다 크게 한 번 야단치고 마는 아빠가 더 낫다고. 그럼에도 난 내가 자식들을 더 사랑한다고 믿는다. 잔소리는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그렇지 않다고 혼자서 우긴다. 그리고 말한다.


자식에 대한 험담은 나만의 것이라고. 그러니 남편이라도 자식에 대한 험담은 할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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