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적이 없나?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치우는 것이 유행인 때가 있었다. 텔레비전을 치우고 그 자리에 책장을 놓으면서 말이다. 그게 한때의 유행이었는지 아니면 지금도 누군가의 집에선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일인지는 모르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아 거실을 공유해야 했던 나로서는 감히 실행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런 집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했더랬다. 그러면서 텔레비전을 치우기만 하면 우리 집 아이들은 대단한 독서가가 될 거라는 엉뚱한 상상까지 했었다. 물론 그것이 가정(假定)의 상황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다는 걸 지금은 알지만, 그땐 그런 허상마저 나의 것이었는데 놓쳐버린 행운처럼 여겨져 아쉬울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없애는 것은 고사하고 설상가상으로 텔레비전이 더 늘어나는 일까지 생겼으니 텔레비전이 공공의 적이 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버님께서는 살아계셨을 때 뉴스 시청을 끼니 챙기듯 하셨다. 아침에 뉴스를 보시고 서운하면 마감 뉴스를 보면 될 것인데 끼니때마다 뉴스를 시청하시려니 뉴스는 식사의 방해물이 되고, 식사는 뉴스의 방해물이 되었다. 그게 못마땅하셨던 아버님께서는 급기야 부엌에까지 텔레비전을 놔버리셨다. 아예 뉴스를 보시면서 식사를 하시려는 듯 말이다. 이후 우리의 식사가 딸그락거리는 젓가락 소리와 수저 소리보다 뉴스 소리에 더 익숙해졌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아버님께서 안 계신 지금은 텔레비전이 사라졌느냐? 그건 또 아니다. 텔레비전을 치우면 음식에 더 집중하여 음식 맛을 즐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웬일인지 텔레비전 소리가 더해지지 않는 식사 시간은 어색하기만 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거기에 추임새를 넣어가며 식사를 해야 맛인데 그런 맛이 없으니 음식 맛은 오히려 더 심심해졌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사라질 뻔한 텔레비전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옮겨놓았다. 익숙해진 행동이 이성을 누른 순간이었다.
며칠 전에도 텔레비전을 보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뉴스가 아닌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이후 텔레비전 메뉴는 다양해졌다.
그 영화에서 배우 박정민이 엄마가 하는 가게를 찾아와 엄마에게 대드는 장면이 나왔다. 엄마에게 고성을 지르며 대드는 박배우를 보고 어머니께서 대뜸,
"머리도 노래가지고 얼굴을 보니 엄마 말 지독히도 안 듣게 생겼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네?" 순간 당황했다. 박배우의 얼굴이 엄마 말을 안 듣게 생긴 얼굴이라고? 어머니께서 영화 <동주>를 보셨데도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으셨을까? 단지 머리가 노랗다는 이유로 박배우의 얼굴이 엄마 말을 지독히도 안 듣게 생긴 얼굴이 되어버리다니... 그의 연기력이 탁월한 것임에 분명하지만, 그가 어떤 외모로 연기를 하느냐에 따라 그의 얼굴이 달라져 보인다는 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처럼 여겨졌다. 그건 외모가 단정하지 못하면 성격 또한 단정치 못할 거란 전제가 깔려 있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어머니도 참. 머리가 노랗다고 엄마 말 안 듣게 생긴 얼굴이라는 게 말이 돼요? 그렇게 따지면 수지(내 딸)도 머리가 연한 갈색이라 노랗게 보이는데 엄마 말 지독히도 안 듣겠네요. 진수(큰형님네 아들)는요. 진수도 회색, 노랑머리 다하고 다니는데 그럼 진수의 얼굴은 어때요?"
"너는 꼭 비교를 해도... 비교할 것을 비교해라. 우리 애들은 그런 애들 아니다"
나의 말에 어머니의 얼굴이 차갑게 변하셨기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식사를 해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생각했다. 나는 과연 외모로 사람을 판단한 적은 없었나 하고. 그런데 그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학부모 총회가 열린 날이었다. 고등학교의 학부모 총회는 적극적인 홍보가 아니더라도 많은 학부모가 참석한다. 고등학교의 입시는 입학과 동시에 시작되기에 선생님의 얼굴을 봬야 하고, 입시 정책이나 학교의 성과도 들어야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 입시 설명을 듣기 위함보다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가 궁금해서 찾는다는 게 옳은 말일 것이다. 그러니 총회가 끝나기 무섭게 민방위 훈련이라도 하듯 각자의 교실을 향해 흩어지는 부모들을 보는 게 당연하지.
내가 딸의 교실을 찾았을 땐 이미 몇몇의 학부모가 책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책상을 붙여 토의하듯 이야기를 나누시려는 선생님의 의도 때문이었으리라.
선생님은 자신을 소개하고 일 년 동안 반을 이끌 포부도 밝히셨다. 그리고 참석한 부모들을 위해 그들의 자녀를 지켜본 소감이나 수업 태도 등도 얘기해 주셨다. 주로 칭찬보다 경계성 멘트가 더 많았다. 수업 시간에 너무 자주 존다느니, 체육복을 입고 학교를 등교한다느니, 지각이 잦다느니 하면서. 간혹 칭찬을 듣는 학부모도 있었다. 학업 성적이 우수하여 모범을 보이고 있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된다는 따위의. 그런 학부모는 가만히 앉아 로또라도 맞은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언의 공기 속에서 자신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걸 만끽이라도 하듯 말이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중간중간에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 있었다. 입학 때부터 모든 선생님의 눈총을 받은 아이였다는데 그 아이가 우리 반이 되었다면서 말이다. 그 아이는 입학 첫날 노랑머리를 하고 왔다는 이유로 선생님들 사이에서 요주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 거기다 그 아이의 부모까지 참석하지 않은 통에 아이는 품행이 단정치 못한 예의 표본처럼 되고 있었다. 선생님께선 그 아이와 함께 어울려 다니는 몇몇의 아이들을 호명하며 부모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주의 내용은 그리 심각하진 않았다. 그저 급식 시간에 밥을 먹지 않고 밖에 나가 군것질을 한다느니 체육복을 입고 다닌다느니 하는 정도였으니. 사소한 지적 사항이었지만 내 아이의 이름이 그 속에 들어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고 집에 돌아와 딸을 불러 그 아이에 대해 물었다.
"지수야, 너희 반에 입학식 때 노랑머리 하고 온 얘가 있다면서? 선생님께서 좋게 말씀하시지 않으시더라"
"그래? 민영이 좋은 앤데. 선생님이 왜 그러셨지?"
"선생님께선 나름 판단하신 게 있으셨으니 학부모들 앞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겠지. 너희들이 모르는 뭔가 있지 않을까. 참 도희도 그 애랑 어울린다고 해서 도희 엄마가 무척 난처해하셨어. 도희는 중학교 때 너랑 친했잖아."
"지금도 친해. 민영이랑도 친하고. 그리고 선생님께선 민영이 첫 이미지만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민영이 나쁜 애 아니야. 얼마나 착한데. 너무 착해서 오히려 맹~해. 그건 날마다 겪어본 내가 더 잘 알지. 선생님은 잘 알지도 못하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대..."
딸이 스스럼없이 학교 생활을 얘기했기에 좀 더 자세히 그 아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몰려다닌다는 그 무리 속에 내 딸이 들어 있음도 알게 되었다. 딸은 급식이 맛없는 날이면 밖에 나가 햄버거와 떡볶이를 사 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밖에서 학교 선생님들을 만나 음료수를 얻어먹었다는 얘기도 천연덕스럽게 했다. 선생님들도 급식 먹기 싫으면 밖에 나와 사 먹는다면서.
난 학생이라면 교칙을 지키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어떤 예외도 없이 말이다. 그래서 지각을 하는 일이나 체육 후 교복으로 갈아입지 않은 채 수업을 받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로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학교를 다니다 보면 지각을 할 수도 있는 일이었고, 체육복을 입은 채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외출 확인증을 받고 학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을 수도 있었다. 그것을 2학년이 되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나눠준 외출 쿠폰을 통해 알게 되었다. 급식 시간에 밖에 나가 음식을 사 먹는 것이 문제아의 행동인 것처럼 딸에게 주의를 줬는데 허락만 받으면 할 수 있는 행동이었고, 보상처럼 주어진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딸의 말처럼 노랑머리 민영이는 착한 아이였다. 지금도 여전히 머리색을 바꿔가며 생활하고 있지만 아무도 이상하다 생각한 사람은 없다. 학업 성적이 우수해 타의 모범이 된 아이나, 노랑머리의 민영, 그리고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금까지도 여행을 함께 다니며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고 있다. 타의 모범이 된 아이가 SKY를 다니는 건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지만 노랑머리 민영이가 E여대를 다니는 건 의외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민영이는 수학 실력이 탁월한 아이였다. 딸은 민영일 수학 천재라고까지 했다. 타의 모범이 된 아이보다 수학은 더 잘했다고.
1학년 때 선생님께선 모르고 계셨다. 선생님이 문제아처럼 여겼던 아이들의 무리 속에는 타의 모범이 된 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걸. 물론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아이들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쉽지 않으셨을 테지만, 많은 까만머리 아이들 틈에서 노랑머리가 돋보인다 하여 문제아처럼 여긴 건 잘못이었다. 외모로 성격까지 규정지었으니.
어른들이 알지 못한 것을 함께 생활한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잘 화합했고 치열했을 고등학교 시절을 즐겁게 보냈다. 어쩌면 민영이에게 노랑머리는 자유로움이면서 용기고 자신감이었을지 모른다. 어른들만이 그것을 몰랐던 것이고.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이 아닌 사람 없다고 했다. 우리가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우리 아이들을 잡초로 만들 수도 꽃으로 만들 수도 있다. 외모를 보고 판단하기에 앞서 바른 눈을 가진 어른이 먼저 되어야함을 노랑머리 민영이를 보며 깨달았다. 그래서 난 지금도 누군가를 판단하는 게 어렵기만 하다.
*이채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