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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Mar 17. 2022

강남에 살지 않는 내가 강남이 반가운 이유

한강

딸의 이사


딸이 이사를 했다. 힘들게 했다. 얼마 되지도 않은 짐을 가지고 이렇듯 힘든 이사를 한 건 잘못된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꿰니 도미노처럼 밀려드는 일에 깔리고 말았다.


우리가 딸의 집에 도착한 것은 이사 하루 전이었다. 올라갈 때만 해도 우리의 몸과 마음은 가벼웠다. 챙겨간 것마저 가벼워 딸이 좋아하는 생김치와 이삿짐을 담을 종이 박스가 전부였다. 그때까지도 남편과 나는 원룸을 차지하고 있는 딸의 짐은 박스 몇 개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좁은 방안에 이삿짐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냐 싶었던 거다. 거기다 처음 방을 구했을 당시 다른 차(이삿짐을 나르는)의 도움이 없었기에 그런 생각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이제야 말하지만 짐이 많건 적건 간에 이사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결혼 후 이사라는 걸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나로선 집이 아닌 방의 짐을 만만히 봤다. 딸이 독립된 살림을 하고 있다는 걸 생각 못한 것이다. 부실한 생각의 대가는 혹독했다. 인간이라면 자신의 몸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할 줄 알아야 했는데 그걸 못 해 몸이 녹신해지는 고생을 했다. 어깨를 제대로 펼 수 없는 고통을 맛봤으면서도 몇 배는 더 고생한 남편 앞이라 생색조차 낼 수 없었다.


우리의 이사가 이렇게 힘들었던 건 남편과 내가 우리의 힘을 너무 믿었기 때문이다. 힘이라는 건 다양한 형태에서 발현되는데 우리는 육체의 힘만을 믿었다. 세기로는 돈의 힘이 최곤데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사를 마치고서야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를 생각했다. 돈을 번다는 건 쓰임이 있을 때 쓰기 위함인데 그걸 생각 못했던 거다. 딸의 이사가 그런 쓰임의 때였다는 걸 지금은 안다.


깨달음이 늦은 건 소용이 없다. 필요 없는 후회만을 동반하기에 그렇다. 그 깨달음을 이사를 도우러 온 조카가 "아니, 왜?"라는 의문을 제기했을 때서야 알아차렸으니 우린 미련해도 한참 미련했다. 그때부터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 않아도 되는 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의욕이 상실되었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일의 시작 전이라면 계획을 변경했겠지만 이미 시작된 일이고 마무리는 지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3층에서 짐을 내려 2층으로 올렸다는 데 있다. 2층에서 짐을 내려 3층으로 올렸다면 아마도 난 계단 바닥에라도 주저앉았을 것이다. 그렇게 2년 동안 불어난 딸의 짐은 우리 차로 두 번, 조카 차로 한 번 이동하여 새 방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짐이 옮겨진 새 방은 깨끗했다. 조카애가 도배를 부탁한 덕일 수 있다. 방을 계약할 당시 딸과 나는 이 방이 마음에 들어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건축 시기는 전에 원룸보다 오래되었지만 통유리라 앞이 환했고 방도 넓었다. 학교와 거리도 가까웠고 지하철역까지는 걸어서 채 5분도 안 걸렸다. 만족스러웠다. 당장에라도 계약금을 걸고 싶을 정도였으니. 중개인분이 다른 방도 구경하라며 역삼동에 베란다가 있는 더 좋은 방을 보여주었지만 딸과 나의 마음속에는 이미 삼성동 그 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계약금을 걸겠다고 하니 남편은 나를 못 미더워하며 근처에서 일하고 있는 조카애한테라도 한번 보이라고 했다. 어찌 생각하면 나를 못 미더워하는 남편의 말이 서운할 법도 한데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사실 빈틈 많은 내가 덜컥 계약이라도 해서 문제가 발생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던 차였는데 조카애가 본다면 그 문제는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조카애는 책임 회피를 위한 나의 보험과도 같았다. 그러마 하고 중개인분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근처 카페에서 조카를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조카가 왔고 나쁘지 않다는 반응과 함께 도배를 부탁한 것이다. 딸이 책상과 침대까지 바꾸고 싶다 하여 침대와 책상까지 빠져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빈 방에 짐을 하나씩 옮기고 있을 때 침대업체에서 침대를 가져와 뚝딱 조립해 주셨다. 전문가의 솜씨는 남달랐다. 이삿짐도 전문가의 손길이 닿았다면 순식간에 뚝딱 이뤄졌을 텐데. 쩝.


침대는 놓였지만 정작 중요한 책상을 구입하지 못했다. 책상은 딸이 이케아에서 봐 둔 것이 있다 하여 그곳에 가서 직접 구입하기로 다. 그런데 이케아의 위치를 듣고선 뜨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이 아니었다. 고양점, 광명점 제일 가까운 거리도 서울을 벗어나야 했다. 몸은 녹초가 되어 바닥에 달라붙고 싶었는데 남편이 온 김에 책상까지 설치해주고 가자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길을 나섰다. 피곤한 몸에 초행길을 운전하는 남편이 걱정이 되어 가는 내내 긴장해 있어야 했다. 그 긴장의 무게에 한몫을 더한 것은 끝도 모르고 펼쳐진 기나긴 터널 2개였다. 거기다 2차전엔 이케아에서의 쇼핑까지.


이케아는 모든 이에게 친절한 공간은 아니었다. 편한 것을 좋아하고 익숙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겐 불편한 공간임에 분명했다. 모델 번호를 가지고 제품을 직접 찾아야 하고, 제품을 구입해 와서는 스스로 조립을 해야 하다니. 나로선 두 번은 못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남편은 그 일을 묵묵히 하며 즐기고 있었다. 딸도 거들며 모양을 맞췄다. 그러는 사이 몇 개의 조각들이 조립되어 책상과 의자가 만들어졌다. 기나긴 이사의 끝을 알리는 작품들이었다.


힘들게 이사를 했음에도 딸이 좋다는 말에 허허실실 웃음이 났다. 고생을 하고도 자식의 말에 웃음이 나는 걸 보면 부모는 전생에 자식에게 빚진 게 많은 죄인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희생이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강남이 반가운 이유

지난주 이사 후 처음으로 다시 딸의 집(방)을 찾았다. 길이 가깝게 느껴졌다. 한강 하나를 건너지 않았을 뿐인데 거의 1시간 정도가 절약된 듯싶었다. 강남이 반가웠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자신이 좋아하는 지역에 관심을 갖는다. 그동안 강남은 나에겐 관심 밖의 지역이었는데(정확하게 말하자면 여우의 신포도와 같은 지역이었는데) 이제는 조금의 의미가 생긴 것 같다. 남편의 힘을 덜어주고 딸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날 수 있는 지역이 되었으니 말이다. 다른 어떤 조건이 존재하건 상관없이 이런 이유 하나만으로 강남은 나에게 고맙고 반가운 지역이 되었다. 새로운 곳에서 딸이 행복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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