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방학을 했단다. 시험을 봤다는데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시험 기간의 존재조차 몰랐다.
"시험을 봤다고, 언제? 네가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공부는 평소에 했지. 학생이 시험 기간을 따로 정해 공부를 하면 쓰나. 평소에 미리미리 해 둬야지."
"어쭈~. 너에게 그런 평소가 있었어? 그렇다면 그 실력 한번 봐야겠네. 이번에 성적 나오면 엄마한테 보여줘 봐. 엄마는 너의 그 평소 실력이 무척이나 궁금하니까."
"아이 참, 어머니도. 어디 다 큰 아들 성적표까지 보려고 그러세요. 아들이 어련히 알아서 했을라고."
어느새 다가온 두 팔이 어깨를 감싼다. 능청스러운 아들의 애교다.
나는 아들에게 관대한 엄마다. 그래서인지 아들과의 관계가 원만하다. 서로에 대한 믿음 역시 끈끈하다. 우리는 눈빛만으로도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짓는 염화미소의 모자가 되었다. 배려가 만들어낸 무언의 언어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를 실천하는 셈이다. 아들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편하고 좋은 관계, 이는 딸의 희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딸의 희생이 아들과 나 사이에 단단한 믿음의 새끼줄을 꼬아 놓은 것이다. 그래서 난 찰나의 순간까지 딸에게 빚진 기분으로 살아가야 한다.
과유불급
딸이 세상에 나오던 날, 나는 운명처럼 알았다. 내가 짝사랑에 빠지게 될 거라는 걸. 딸은 부모인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에 나의 어린 시절 받지 못했던 미지급분의 사랑까지 받으며 자랐다. 부족함 보다 못한 흘러넘침의 수렁에 빠져서 말이다. 자유의지가 강하고 독립적 성격을 지닌 딸은 자신의 팔다리를 자처하며 모든 일을 처리하는 엄마가 불만스럽고 두려웠을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도 자신의 손으로 골라 입고, 아침밥이 먹기 싫을 땐 먹지 않고,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더라도 노래를 들으며 느긋하게 말리고 싶었는데, 엄마는 양말까지 세팅된 옷을 입으라 하고 꾸벅꾸벅 조는 입에 밥을 넣어 주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머리를 말리려 했건만 빨리빨리 말리지 않으면 비듬 생긴다며 드라이기를 뺏어 잠깐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어디 그것뿐이었을까?
'시험은 언제 보니, 계획표는 세웠어, 공부는 어디서 할 거야'로 시작해 결과를 묻고 시험에 대한 피드백을 쏟아냈다. 거기다 '너는 할 수 있어'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딸이 하고 싶다는 공부는 말리면서 원하지도 않는 공부를 강요했다. 딸의 입장에선 '무슨 엄마가 이래' 싶었을 것이다. 결국 동생과의 차별을 문제 삼은 딸은 폭주했고 '왜 나만'이란 말을 짠 굴비 엮듯 늘어놓으며 '왜 나만 사랑하냐'가 아닌 '왜 나만 간섭하냐'로 자신의 서러움을 토해냈다.
결자해지
딸에 대한 사랑이 집착으로 발현되고 있었다는 걸 몰랐던 나는 허탈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힘이 빠졌다. 한없이 녹아내린 몸은 흔적도 없이 콘크리트와 하나가 되고 싶어 했다. 일어나기가 버거웠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러기엔 딸에 대한 나의 설렘이 너무도 강했으니까. 좋은 엄마가 되고자 했던 소망은 엉뚱한 곳에서 길을 잃었고, 길을 잃었기에 또 다른 길을 찾았다. '너의 선택으로 살아라'라는 말은 딸을 강하고 자유롭게 만들었다. 딸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았기에 아들과는 늘 미소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 것이다.
딸과는 가끔씩 전화하고, 가끔씩 만난다. 전화는 반갑고, 만남 후 헤어짐은 아쉽다. 딸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다정함이 배어있다. 가끔은 전화를 하다 울컥하기도 한다. 불쑥불쑥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이제는 돈을 보내달라는 문자마저도 반갑다. 더 필요하지 않냐고, 언제든 얘기하라고 전화를 종용한다.
딸에 대한 사랑? 아니 자식에 대한 사랑은 부모에겐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과 같아 피할 수 없어 늘 맞아야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