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씽어즈의 뜨거움

뜨거운 씽어즈를 보다 눈물 흘리다가

by 은빛구슬
눈물이 헤픈 엄마

텔레비전을 보며 훌쩍거리고 있을 때였다. 화장실을 가던 아들이 나의 모습을 힐끗 훔쳐보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저으며 한 마디를 던졌다.

"아~ 우리 어머니는 눈물이 너무 헤퍼요"

장난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민망함에 반응이 커졌다.

"그래 니 엄마 헤픈 사람이다. 눈물이 하도 헤퍼서 티브이만 봐도 눈물이 난다. 왜, 문제 있어?"

"아이고,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감정에 충실한 모습이 보기 좋아 드린 말씀인데"

나의 과한 반응이 자신의 예상과 다름을 감지했는지 쏜살같이 달려와 나를 안으며 능청스럽게 달랜다. 나쁜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으니 오해하지 마시라고. 나 역시 민망함에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지 화가 나서 한 말은 아니었다고 주거니 받거니 웃음을 건네며 사과를 나누었다.


가끔 이렇게 티브이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면 어느 한 장면에 꽂혀 눈물을 왈칵 쏟을 때가 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발생한 일이라 눈물을 수습하기도 전에 들키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전에는 나이가 드니 눈물도 는다는 핑계로 상황을 이해하려 했는데 문득 아들의 말처럼 감정에 충실해서 일어난 일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신형철 교수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도 일종의 능력인데 그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얻어진다는 말을 했었다. 인간은 경험한 만큼만, 느껴본 만큼만 알아차리는 한심한 한계를 지녔기에 자의든 타의든 타인의 고통에 가까이 있어본 사람이나, 직접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뜻이었다. 고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을 하고 눈물을 흘린 나는 자의든 타의든 고통과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었고, 고통을 느껴본 사람이었다. 고통의 감정을 배운 사람이었다.


난 '뜨거운 씽어즈'라는 프로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 프로는 제목부터가 뜨거웠다. 출연진은 그보다 더 뜨거웠다. 뜨거움은 두 눈을 눈물로 채웠고 언제든 살짝만 건드려도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을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뜨거움의 정체는 알 수 없다. 적지 않은 나이에 도전을 하는 이들이 멋있어서인지, 주연급의 능력을 지녔음에도 주연의 자리에 있지 않은 이들의 무대가 너무도 빛나서인지. 그저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눈과 가슴이 뜨거워졌을 뿐이다. 그들은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도전자들인데 이미 내 눈엔 그들의 미래가 보여서였는지도 모른다. 다시 내 눈물을 뽑아내고 있는 그들의 미래가.



콧물을 흘리는 엄마



어제의 눈물 사건이 잊히지 않은 오늘 아침, 청소를 하는데 재채기가 났다. 재채기가 그치기 무섭게 콧물도 났다. 언제부턴가 재채기를 하면 으레 콧물이 난다. 청소를 하느라 장갑을 끼고 있어서 또 재채기가 나면 콧물을 닦을 수 없을 것 같아 화장지를 찢어 엄지 손가락만 하게 돌돌 말아 코에 끼우고는 아들 방으로 청소를 하러 들어갔다. 굳이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데 또 오셨냐며 아들이 내켜하지 않는다.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나의 일을 시작했다.


바닥을 닦고 있는데 아들이 눈을 떼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다 한마디를 건넸다.

"아니, 어머니. 어린애도 아니고 눈물로도 모자라 콧물까지 질질 흘리셨어요?"

"그래 이놈아, 니 엄마 나이 들어서 추접스럽게 눈물도 질질, 콧물도 질질 흘린다. 그래서 어쩌라고. 못된 아들 같으니라고"

능글맞게 실실거리는 아들을 향해 나도 한방을 날렸다.

"아이고고 우리 어머니 화나셨어요? 화내지 마세요. 저는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시든, 콧물을 흘리시든 여전히 사랑해요. 제 맘 다 아시면서ㅎㅎ"


어제는 눈물을, 오늘은 콧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놀림받는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도 아들이 밉지가 않다. 못된 아들이라고 소리쳤지만 나이 들어가는 엄마를 놀리며 놀아주는 아들이 고맙다. 내가 아들을 사랑하는 만큼 아들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늘 나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아들. 아들이 타인의 마음도 읽어내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아니, 놀림 속에도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고 있는 아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아들아, 너는 엄마를 놀리지만 엄마는 언제나 너를 칭찬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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