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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Oct 26. 2019

벨을 눌러야만 들어올 수 있는 집

집에 사람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어요.

띡띡띡띡.


요즘은 디지털 도어키라는 것이 있어 번호만 누르면 열쇠 없이도 대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집들이 많습니다. 유치원 아이나 나이 든 어르신 상관없이 번호 몇 개만 외우면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 된 거지요. 그런데 우리 집 대문에는 디지털 도어키는 커녕 열쇠를 넣을 수 있는 작은 구멍 조차도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되신가요? 우리 집 대문은 열쇠 구멍이 없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올 수가 없고, 누군가가 집 안에서 문을 열어줘야 들어올 수 있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지만, 제 주변의 많은 분들은 우리 집 대문에 열쇠 구멍이 없는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줘도 아직까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집을 비워야 할 상황은 수시로 발생할 텐데 어떻게 집을 항상 지키고 있느냐며 이해를 못하는 거죠. 그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생활이 익숙해진 전 "어, 우리 집은 그래" 라며 당연한 듯 얘기를 합니다.


우리 집 대문의 열쇠 구멍 부재는 대문이 설치된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집의 첫 주인이셨던 시할아버지께서 대문을 다실 때 열쇠 구멍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집에는 항상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게 시할아버지의 지론이셨던 거지요. 사람이 집에 있는데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올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누군가의 집 보기가 이어지고 있으니, 우리 집은 50년이 되는 기간 동안 단 한번도 비워진 적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시할아버지의 간단 명료한 이유 하나만으로 그동안 우리는 너무도 많은 불편을 겪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아버님, 어머님을 포함해서 가족 여행이라는 것을 다녀보질 못했습니다. 그 누군가는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모두 함께 떠나는 여행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거죠. 가끔 아버님, 어머님께서 집을 보고 계시면 남편과 나, 아이들은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행도 편할 수는 없었습니다. 두 분만을 남기고 집을 나서는 것은 뒤통수가 따가워지는 시선을 견뎌야 했으니... 그러나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그 따가운 시선마저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부모님과 제대로 된 여행 한번 못하게 만든 대문의 열쇠는 가족 행사를 언제나 집안 행사로 만들었습니다. 집 안 행사, 집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사.

 

부모님의 생신이나 가족 모임이 있을 때 며느리들은 늘 집에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행사 때나 맘 편히 먹고 싶은 거 먹으면 좋을 텐데 고만고만한 솜씨를 가진 며느리들이 늘 정해진 메뉴만을 행사 메뉴로 준비했습니다. 그러다 형님들과 제가 소심한 반항을 했습니다. 저희끼리 집 보기를 자처하며 음식 먹기를 포기한 것이지요. 그 해 가족들은 며느리들 없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집 밖 행사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아버님의 반대로 그 해를 마지막으로 다시 집안 행사로 바뀌고 맙니다.


지금도 우리 집은 일정한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남편이 출근하면 어머니께선 취미생활을 하러 나가십니다. 그러면 제가 집을 봅니다. 오전 시간의 집 보기는 제 담당입니다. 12시가 되면 어머니께서 돌아오시고 저와의 바통 터치가 이루어 집니다. 저는 일을 하러 나갑니다. 오후 시간의 집 보기는 어머니 담당입니다.


학교 수업을 끝내고 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원 운영이 아니었다면 저는 일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을 겁니다. 직업을 바꾸고 싶어도 오전에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전, 어머님의 취미 생활은 소중하니까요.


보물이라도 집안에 숨겨 놨냐는 친구들의 비아냥에도 우리 집 대문은 아직도 열쇠 구멍 하나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우리 집 대문에도 작은 구멍 하나 정도는 달리지 않을까요? 아니 운이 좋으면 최신식 디지털 도어키라도 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여전히, 우리는 "please, 문 좀 열어 주세요"를 외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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