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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Oct 29. 2019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이에게 보내는 신호

특별한 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늦잠이 일상이 된 일요일.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오늘은 서울에 강의를 들으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 한 일인 글쓰기 시작. 이 시작의 단초를 마련해 주신 분이 바로 오늘 강의를 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모르실 거다. 자신이 어디선가 던진 말 한마디가 그 누군가는 삶의 방향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어찌 되었건 나는 그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득 품은 채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난 보통 서울을 갈 때는 ktx를 탄다. ktx의 빠른 속도를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강의 시간이 오후 1시이다 보니 넉넉해진 시간을 즐기기 위해 고속버스를 탔다. ktx를 타면서 한 동안 느끼지 못했던 휴게소에서의 작은 기쁨을 느껴보고 싶었다. 버스에서 내려 줄줄이 늘어선 음식을 보며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게 되는 선택 장애, 기분 나쁘지 않다. 그래서 교육을 위해 나선 길이었지만 마음만은 설렘을 안고 떠났다.


졸음

버스에 자리를 잡은 후 책을 꺼냈다. 책을 두 권 가져왔는데 가방에는 3권의 책이 있었다. 무심코 올려둔 책을 모두 가져온 모양이다. 순간의 덜렁 거림이 어깨에 고통을 안기는 순간이 되었다. 어쩐지 백팩이 아들 녀석 책가방처럼 무겁더라니...

세 권의 책 중 한 권은 사인받을 책이고, 다른 책은 읽다 만 책이다. 다른 한 권은 사 두었지만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 90년생에 대한 책이다. 그중 읽다만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깜짝! 눈이 번쩍 뜨였다.

나른한 버스 안의 공기. 모든 사람들의 침묵. 그 와중에 난 책을 든 채 졸고 있었다.

오, 마이, 갓!

누구 본 사람이 없나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다행이다.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하마터면 망신당할 뻔했다. 괜한 지적 허영으로 나 자신 그 누군가의 비웃음 대상이 될 뻔한 것이다. 역시 버스 안에서는 조용히 동참하듯 자야 하나 보다.


서울에 도착하여 강의 장소로 향했다. 택시를 탔는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하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강의실을 찾았다. 강의실 입구에서 자료를 나눠 주시는 선생님을 보았다.

선생님의 모습에 놀랐다. 뭐랄까? 이런 말이 실례가 될 수도 있는데 귀여웠다. 자그마한 체구에 가느다란 목소리. 난 큰 키에 다소 도도한 선생님을 상상하고 있었다. 난 왜 무엇인가를 이룬 사람들은 다 크게 느껴질까? 그런 의미에서 강사 선생님 역시 큰 분일 거라 여기고 있었다. 난 눈치 없게도 선생님께 생각보다 체구가 작다는 말을 했다. 그 말속에는 친근함이 느껴진다는 의미와 한번 안아주고 싶다는 따뜻함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런 나의 마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셨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강의하는 동안 점점 말이 빨라지고 있었다. 말의 속도에서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은 간절함이 느껴졌다. 가끔씩 튀어나온 어린아이의 어리광 부리는 듯한 말투. 그런 말투 하나도 매력처럼 귀에 팍팍 꽂혔다. 동종 업종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모인 자리란 그런지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선생님의 교수법, 독서에 대한 생각, 학부모를 대하는 태도, 학원 운영에 대한 제반 사항, 무엇 하나 허투루 들을 말은 없었다. 그리고 반성을 했다. 내가 너무 편하게 수업을 하고 있었구나. 경력이라는 것은 결코 내세울 만한 것이 못되구나. 기간보다 얼마나 성실히 잘하느냐가 중요한 것이구나.


'열심히만 하지 말고 잘하란 말이야' 마음속에서 이런 말이 자꾸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강의를 들으며 선생님에게서 프로의 향기가 느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향기였다. 교육서비스는 나를 파는 일이다. 그 어떤 교재나 책 보다 자기 자신이 먼저 교육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선생님은 탁월한 전문가였다.


아주 오랜 옛날, 아니 그리 오래되지 않았나? 언제쯤인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최인아 책방의 최인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멋진 광고 카피가 생각났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어쩌면 나는 더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의 강연에서 더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의 일을,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게, 마음을 다해 강의를 해 주신 선생님의 강의가 나에겐 최고의 강의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어서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남과 다른 독서 교실 운영법을 알고 있기에 강의를 하는 것뿐이라는 선생님의 말에서 선생님의 겸손함을 느끼며, 선생님께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선생님은 아름다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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