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빛구슬 Jun 08. 2022

자식 앞에서 성질 자랑은 무죄

'나는 아니다. 나는 다르다. 나는 아이의 인격을 존중할 것이다. 나는 결코 화내는 부모가 되지 않을 것이다'


미래의 부모상을 정립한 때가 있었다. 결혼 전의 일이다. 그때 난 결혼도 하지 않았고 부모가 될 생각 따위도 없었다. 그런데 저런 다짐을 했던 데는 이유가 있다. 머리를 강타한 충격적인 소리를 들어서였다. 


결혼 전 과외를 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이의 집 쪽으로 향하던 나는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상황과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들리는 아이 엄마의 앙칼진 목소리. 세상에 그토록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라니.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문을 뚫고 나온 목소리는 내가 알던 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알던 분은 그런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자신의 속내을 내비치지 않는 사람이라도 오랜 시간을 겪다 보면 성격이 저절로 파악되기도 하지 않는가. 한데 그동안 겪어본 바로 그분은 절대 그런 소리를 낼 분이 아니었다. 언제나 모나지 않은 성격에 둥그런 말투는 인자해 보이던 얼굴과도 너무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목소리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본성이 모난 사람이나 낼 수 있는 소리라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몸이 얼음처럼 굳었다.


작정하고 들은 것도 아닌데 몰래 남의 얘기를 엿들은 도둑고양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 수가 없었다. 가방으로 가슴을 가리고 발끝을 세웠다. 서둘러 자리를 떠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뒤로 하고 살금살금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층을 내려오고 또다시 한 층. 숨소리마저 죽여야 했다. 2층을 더 내려간 후에야 한숨을 돌리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멍한 눈으로 닫힌 문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나는 절대 소리치는 엄마는 되지 않을 거다. 아이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윽박지르거나 소리치는 엄마는 되지 않을 거다, ' 

놀란 가슴에 여태껏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더랬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낳은 아이를 키우면서 그 옛날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그 엄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히스테릭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날카로웠던 목소리는 그분의 시그니처가 아니었다. 그분은 자신의 이름 하나로는 어떤 자리에서든 이성적이고 너그러울 수 있는 그런 분이었다. 내가 알던 성격 그대로. 다만, 자식과 함께 묶인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만큼은 가끔씩 그렇게 이성적일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인지 자식이 없는 사람들을 볼 때면 참 느긋하고 성격이 좋아 보인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 그분들은 자신의 인내를 시험당하지 않아서 그렇게 여유롭고 대범한 거다 생각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화낼 일이 별로 없지만 가끔씩 송곳처럼 뾰족하게 찔러대는 목소리가 목을 타고 올라올 때면 문뜩문뜩 그때의 일이 떠올리곤 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아, 자신의 아이에게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키워낸 엄마들은 생불이었구나. 그런 분들은 성인군자 반열에 올려도 마땅한 분들이었어.'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는 내가 알지 못했던 성격이 드러나는 걸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인내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그 인내가 사상누각이 되는 걸 내 눈으로 지켜봤으니까.


성격 좋은 사람? 그런 사람도 불같이 화낼 수 있다.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자식 앞에서는 자신의 본능을,  숨겨진 성격을 감출 필요가 없어서인지 모른다. 자신의 치부를 보여서라도 잘못한 일은 바로잡아야 하는 게 부모이니 말이다. 자식을 화풀이 대상으로 생각하는 부도덕한 부모가 아니라면 숨겨진 성격에까지 가면을 씌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자식에게 화를 내고 자신이 오은영 박사가 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부모가 있을 것이다. 그건 본인의 성격이 모나서가 아니다. 단지 비뚤어진 관계의 틀이 맞춰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삐걱거림일 수 있다. 그러니 자식을 혼내고 후회가 된다면 후회한 만큼 자신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표현해 보라. 나의 상처가 아이의 상처로 이어져서는 안 될 테니. 다만 자식을 보며 참을성 없는 자신을 탓하거나 평가절하하는 무모한 행동은 하지 마시길. 자식 앞에서의 성질 자랑은 무죄일 수 있으니.

이전 02화 말에 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