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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Aug 20. 2022

아기 분유를 타 먹는 효자 남편

사랑받을 만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 했다. 인간관계의 공정성에 관한 얘기다. 사랑받는 것이 좋아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지, 정작 본인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하는 건 몰염치며 부정이다. 모든 관계가 그렇다. 철저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말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유독 아픈 손가락이 존재한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누구나 다 안다. 아픔의 강도만큼 사랑의 강도는 다르니까.


그동안 난, 남편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어쩔 수 없는 운명적, 필연적 관계에서의 사랑이라 여겼다. 자신의 몸을 빌어 태어난 분신을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 며느리인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한들 아들인 남편은 따라갈 수 없을 거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의 사랑에 깊이가 달랐던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거기에는 사랑받을 만한 행동을 한 남편과 그러지 못한 며느리인 내가 있었다. 늘 그랬던 건 아니지만 예의로 대하는 마음과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에는 그것을 전하는 공기의 파장부터가 달랐다. 같은 '예'라는 대답에도 피부에 닿는 온기와 떨림은 감자칩의 바삭함과 브라우니의 촉촉함 같았다. 나의 '예'는 쉽게 부서졌고, 남편의 '예'는 촉촉이 스며들었다. 나는 그것을 분유를 타서 마시는 남편을 보고 알았다. 그의 행동은 효자이기에 가능했던 행동이 아니라 노력에 의한 결실과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께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도 마다하지 않고 마트를 찾아 분유를 사 온 것은 텔레비전에서 의학 전문가들이 산양유의 효능을 설파한 직후였다. 방송을 시청한 후 하루를 넘기면 효능이 떨어지기라도 하듯 어머니께선 그렇게 서두르신 것이다. 사랑이었다. 그렇게 사 온 분유를 먹기 싫다 말하면서도 꾸역꾸역 타 마시는 남편의 행동에도 사랑이 담겼다. 하지만 우유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분유를 마시지 않은 나의 행동에는 사랑이 비었다. 그동안 난 사랑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어머니께서 나보다 남편을 더 사랑한다고 서운해했다. 염치없는 생각이었다.


나는 알고 있다. 남편도 나만큼이나 우유를 싫어한다는 걸. 더욱이 성인이 마시는 산양유가 아닌 유아식 분유라면 더욱... 그 비릿한 맛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성인용 산양유가 있음에도 누가 먹어도 탈이 없다는 이유로 유아식을 선택하신 어머니에게는 어떤 핑계도 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남편은. 그런 남편과 달리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았다. 미움받을 용기를 택한 것이다. 그러니 혹 미움을 받는 일이 생긴다 해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투덜대서는 안 된다. 내가 선택한 결과니까.(물론 이런 일 따위로 어머니는 나를 미워하지 않아요.)


지금도 남편은 분유를 타 냉장고에 넣어두고 시원함을 마시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을 쪽쪽 흡수하면서.

참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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