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와 함께 생활하신 아버님의 제사상만은 따로 차려드려야 할 거 같아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 제사, 아버님 제사 이렇게 일 년에 두 번의 제사를 치르는 것으로 결정을 봤습니다.
솔직히 말해 제사상 차리는 일은 그리 힘든 일은 아닙니다. 20년을 반복해서 비슷한 메뉴로 제사를 지내는데 그게 무에 그리 어렵겠습니까?
한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장을 보는 일, 제사를 지낸 후 뒷정리를 하고 다음날은 또 출근을 해야 한다는 일등이 정신적 스트레스로 남아 제사가 불편한 것이지요.
그런 스트레스에 한몫 더한 것이 바로 저 제기입니다.
제사가 끝나면 어머니는 아주버님과 조카를 빨리 집에 보내십니다. 다음 날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요. 그러면 저와 남편은 빠르게 뒷정리를 시작합니다. 제사 음식을 그릇에 옮겨 담고 설거지를 시작합니다. 접시는 설거지 후 건조기에 차곡차곡 쌓아 말리고, 제기는 두 번 정도 마른행주로 닦아 물기를 완전히 없앤 후 보관합니다. 그 손길이 접시의 두 배가 됩니다. 그래서 제기를 사용하지 않은 일은 저를 도와주는 고마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님의 허락이 진심이 아녔음이밝혀지면서 우리의 작은 반항은 길을 잃었고 전통 앞에 굴복하고 맙니다.
시할머니 제사를 지낸 후 어머니께선 꿈을 꾸셨답니다. 꿈속에서 시할머니를 뵈었는데 시할머니께서 슬픈 표정으로 어머님을 쳐다보셨다는 거예요. 어머니께선 시할머니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아 꿈을 꾸고 나서도 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며 우리를 불러 얘기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할머니께서 음식을 제대로 못 드시고 가신 거 같다. 제기에 음식을 차리지 않아 화가 나신 거 같으니 다음부터 제사 음식은 제기에 차려라. 조상님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겠냐?
남편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챘습니다. 어머니는 본인이 살아계시는 동안만큼은 본인의 뜻대로 제사를 지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큰집에서야 문제 될 일은 아녔기에 어머니 뜻은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렇게 소심한 반란 같았던 우리의 제기 사건은 물거품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강한 힘이 있는 듯한 아주버님의 말씀 역시 어머니의 꿈 앞에선 힘을 잃었습니다.
어머님은 내용 못지않게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신 분입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사시는 분이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녔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어머니의 생각은 자기 관리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항상 화장을 하시고 계시는 단정한 모습, 주변을 예쁘게 꾸미시는 미적 감각. 이런 것은 내용을 커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어머니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어머니 뜻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이렇게 우리 집 제기는 창고에서 수명을 달리할 위기를 맞았다가 기사회생하여 화려한 음식을 휘감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