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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Mar 05. 2020

봄은 왔으나 봄이 아니다.

계절은 봄이나, 마음은...

 봄은 왔으나, 봄이 아니다


 빨래가 잘 말랐다. 뻣뻣한 듯 꼬실거리는 느낌이 좋다. 햇볕 좋은 날에 너른 마당에서 춤추는 바람과 함께 마른 빨래는 당연한 일상에서 얻은 특별한 행복이다.


 하여, 봄날의 햇볕은 단순히 '날씨 좋다'란 말로 보내버려선 안된다. 잘 활용하여 유용하게 쓴 후 아쉬운 마음을 고이 담아 여름날에 내어 주어야 한다.


 뽀송한 촉감에 풋풋한 향까지 풍겨주는 빨래를 걷고 있자니 미세먼지 가득했던 작년 봄이 생각났다. 작년 봄은 닦지 않은 유리창처럼 뿌했다. 봄맞이 대청소를 해서라도 말갛게 씻어주고 싶은 그런 답답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의 봄은 어떤가? 마음까지 맑아지게 하는 쨍함이 작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반갑지 않을 수 없는데 우리는 청명한 모습으로 찾아온 20년의 봄을 두 팔 벌려 맞을 수가 없다. 코로나 19가 엄습한 지금의 상황이 우리에게 그런 마음의 여유까진 만들어 주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오랑캐 땅엔 풀과 꽃이 피지 않으니, 봄은 왔으나 봄이 아니다-


  요즘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말이 실감나는 날이 많다. 계절은 분명 봄이건만 우리의 마음엔 봄이 오지 않고 있다.


 시인이 오랑캐 땅에 끌려간 등소군을 서러워하며 저런 말을 했다면, 나는 20년의 봄을 서러워하며 저 말을 한다. 작년보다 더 어여쁜 모습으로 찾아왔건만 복병을 만나 눈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는 봄이 참으로 서럽다고.

그래도 봄은 봄이다. 세상이 색을 입기 시작한다. 담장 옆 진달래가 만개했다. 홍매화가 화무십일홍을 입증하고 얼굴을 떨군 후 진달래가 다음 차례로 손을 든 것이다.

 동백 또한 반갑다. 어느 순간 흐드러지게 만개해버린 진달래와 달리 동백은 꽃송이 하나가 얼굴을 내밀면 그 옆에서 다른 꽃봉오리가 준비를 한다. 순서를 지켜 하나, 둘 피어나다 어느 순간 함께 목을 떨군다.


  이렇듯 봄은 꽃을 피우고, 새싹을 틔운다. 온몸을 다해 자신을 알린다.


 이제는 봄의 몸짓에 반응하고 싶다. 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다. 지구촌 외톨이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가 그들 앞에 당당하게 나설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니고, 일을 해도 안심할 수 없다.


 <호지유화초 춘래불사춘>


중국이 오랑캐라고 불렀던 우리나라엔 꽃이 피고 풀이 돋았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시작된 코로나19로


봄은 왔으나, 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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