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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Apr 14. 2020

하루에 두 번 출근하는 남편

취미가 직업이 될 거 같다.

취미 생활은 즐거워


남편이 취미 생활을 시작했다. 명목상으론 퇴직 후의 삶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무료한 저녁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한 계획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계획은 백 프로의 성공을 넘어 남편의 재능까지 발견한 계기를 만들었다.


처음 취미 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계획은 단순했다. 퇴직까진 아직 시간이 으니 그 기간 동안 연습이나 해 보자는 식이었느니 말이다. 그저 쉬엄쉬엄 이론을 익히고 간단하게 연습 작품 하나 정도씩 만들다 보면 퇴직할 때쯤이면 어느 정도의 경지엔 이르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스텝 바이 스텝을 바라고 시작한 취미가 남편의 적극적인 자세와 재미로 눈부신 발전을 보였다. 누구나 기계와 연장만 있으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인지 남편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어 그리 된 것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남편은 지금 설계도만 있으면 웬만한 물건은 뚝딱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최근에는 도마 만드는 일에 빠져서 가족과 친구들의 도마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편은 무슨 일이든 한번 꽂히면 굉장한 몰입도를 보였던 거 같다. 추진력 또한 강해 시작한 일은 신속하게 처리했다. 


남편에게 목공은 생소한 분야였다. 그런 이유로 진도가 나간다 해도 그 속도는 더딜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생각과 달리 남편의 발전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심지어는 물건을 만들다 그 기계에서 불편한 점이라도 발견할라치면 부속품을 교체한다거나 새로 조립을 해서 새로운 기계로 만들어버리기까지 한다. 분해하는 것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려 그냥 쓰라고 해도 자기의 동선에 맞게 바꿔야 일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면 기어코 분해해서 조립을 해낸다. 그 능력이 하도 신기해서 어찌 그리 잘하냐고 물어보면 대한민국 남자들은 다 할 수 있단다. 과연 그럴까? 정말로 대한민국 남자들의 DNA 속엔 자기 집 가구 하나 정도는 뚝딱 만들어낼 능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인가? 그게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남자들은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남편이 딸을 위해 만든 식탁이다. 좁은 공간에 활용하기 좋다


오늘도 남편은 저녁을 먹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는 익숙해진 일이다.


"자,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남편의 두 번째 출근이다. 두 번째 출근은 아침과 차이가 있다. 아침의 출근에는 없는 미소가 저녁의 출근에는 넘쳐 흐르고 있다.


"퇴근하면 좀 쉬고 싶지 않아요?"


목공방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내가 물었다. (참고로 목공방은 우리 집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것이라는 걸 알만한 사람은 안다)


"이 사람이 뭘 모르네. 이게 나의 피로 회복제야. 집중해서 뭔가 하날 만들어 봐, 하루의 스트레스가 쫙 풀린다고. 그게 어디 운동에 비할까?"


저 말은 매일 운동 좀 하라고 노래를 부르는 내게 들으라고 한 얘기다.


나에겐 단순히 노동으로 보이는 그 일이 남편은 즐거운 일이라 한다. 돈을 주고 하라고 해도 싫은 그 일을 돈까지 들여가며 하고 있다. 이렇게 같은 일에 대해서도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우리가 각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인생의 두 번째 직업은 취미로


우리는 백세 인생 시대를 살고 있다. 백세 인생 시대에는 누구나 의도치 않게 백수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철밥통이라는 불리는 직장을 꽉꽉 채우고 퇴직한다 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단지 시점의 문제이지 대상의 문제는 아니란 의미다. 이에 우리는 인생 2막을 살기 위한 대비를 해야 한다. 그 기간이 퇴직 후일 수도 있지만 퇴직 전이라면 더 좋겠다.


그러나 인생 두 번째 직업에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선택했던 첫 번째 직업과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 거기에는 반드시 즐거움이란 전제 조건이 포함되어야 한다.


첫 번째 직업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와 가족을 위한 직업이었다면 두 번째 직업은 남은 삶을 위한 즐기기 위한 직업이어야 한다. 그래야 충실하게 살아온 삶에 보상할 수 있다.


남편의 취미 생활을 보면서 인생 두 번째의 직업은 취미로 선택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취미는 즐기는 일이다. 인생 두 번째의 직업은 즐기면서 할 수 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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