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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May 16. 2020

서러운 눈물, 작약이 진다

지는 꽃을 바라본다.

봄비인지 여름비인지 알 수 없는 빗속에서 작약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고개를 들어 버텨보려 하지만 짓누르는 빗물의 무게는 감당할 수가 없다. 서러움에 흘리는 눈물은 빗물이 되어 내린다. 작약이 지려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이 저릿하다.


정원에서 많은 꽃들이 피고 지는 걸 지켜봤다. 그런데 오늘 보는 작약의 소멸이 이토록 안타까운 건 그 작은 봉오리를 만나기 위해 기다렸던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도 길었기 때문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보게 된 꽃이니 그 기다림만큼이나 꽃의 수명도 지속됐으면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생명이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삶으로만 살아야 한다. 작약에게 주어진 삶은 짧고 화려한 순간의 삶이었다. 작약이 백일 동안 핀다 하여 이름 붙여진 백일홍의 삶으론 살 수 없는 노릇인 거다.




내가 이 꽃을 심은 건 3년 전이었다. 봄이 되면 싹이 돋기는 했으나 2년 동안 꽃봉오리가 맺히지 않아 이러다 죽는 건 아닌가 걱정도 했더랬다. 그런데 3년 차인 올해 나의 바람을 듣기라도 한 듯 꽃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워냈다. 그 모습이 대견해 남겨 둔 사진은 이제 이 꽃의 삶을 이야기하게 한다.

붉은빛이 도는 꽃대에서 첫 봉오리를 봤을 때 우리 가족은 환호했다. '그래, 너도 이제 하나의 꽃으로 살아갈 자격을 얻었구나' 궁댕이라도 톡톡 다독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길게 뽑아낸 연약한 모습 어디에도 손댈 곳은 없었다. 우리는 그저 눈으로만 대견함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시간이 여물어가면서 츄파춥스처럼 야물게 다문 입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꽃은 환하게 웃었다. 웃는 그 꽃에서 다른 꽃의 모습이 보이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화려한 그 모습은 화왕이라는 모란의 모습을 담았고, 노란 달걀지단을 채 썬 듯한 수술의 모습은 동백을 닮았다. 그 모습에 취해 황홀해 한 시간은 채 5일이 못 된다.


작약의 소멸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 마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꽃이나 사람이나 갈 때가 되면 다 저렇게 초라해. 그래도 저런 꽃은 다시 피기라도 하지..."

작약을 보며 어머니께서도 서러워하고 계셨다.


나는 지는 작약을 보며 내년을 기약했다. 그런데 어머니께선 작약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계셨던 것이다. 한번 지면 다시 피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꽃이 지는 걸 안타까워했을 뿐인데 인생을 이야기하시는 어머니 땜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난 내년의 작약도 어머니와 함께 볼 거라 말했다. 어머니께선 튼튼한 고목일수록 언제든 뚝 부러질 수 있다며 기약할 수 없는 노인의 삶을 얘기하셨다. 하지만 상관없다.


난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그보다 더 먼 후일에도, 어머니와 피고 지는 작약을 보며 그 화려함을 즐길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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