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운동의 장점
인문학 과외를 받게 되었다. 2주마다 진행되는 수업이다. 고전과 철학을 읽고 가면 형님이 설명을 해준다. 내가 공부한 것은 점. 형님이 이어주면 선과 면으로 펼쳐진다. 오늘은 강신주 교수님의 '철학 대 철학'과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읽고 만났다.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로 흐르는 존재론, 그리고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숨어 있는 의미들을 말씀해 주신다. 그리고 두 흐름의 마주침, 철학과 문학은 만난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 사실을 오늘 알았다. 내가 정리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듣고 있는데 희열을 느낀다. 처음 운동과학을 공부했을 때의 느낌이다. A 선생님이 주장하는 이론, B 치료사가 주장하는 이론이 상충되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들이 있었던 트레이너 초반의 느낌이 그대로 느껴진다. 덕분에 요새 '공부한다.'라는 느낌이 오랜만에 든다. 그리고 즐겁다. (몸은 좀 아플 때가 있지만 즐거움은 언제나 가득하다.)
공부를 마치고 식사를 했다. 그리고 이제 출근을 위해 센터로 돌아오는 길, 자신이 아니라 큰 사람의 인생을 조망하고 따라가 보면 좋다는 형님의 말씀을 듣는다. 나는 나름의 반기를 제시한다. 형님도 보고, 형님이 생각하는 스승님도 볼 거라고 말이다. 이 말의 근거로 '운동학습' 이야기를 꺼냈다.
운동학습 분야는 쉽게 표현하면 '우리는 어떻게 움직임을 배우는가?'를 공부하는 분야다. 트레이너들이 어떤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운동하는 이들이 운동을 더 빨리 배우는 지를 알게 되는 그런 학문 분야인 것이다. 여기에서 '시범과 모델링'에 관련된 내용을 형님께 꺼냈다.
우리가 운동 및 움직임을 배우고 익힐 때, '시범'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좋은 퀄리티의 시범이 필요하다. 시범을 보여주며 초보자들의 경우엔 어디에 집중하면 좋을지 짚어주면 더 잘 배운다. 피해 갔으면 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는 마치 성공한 사람들, 혹은 내가 보았을 때 아름다운 인생을 걸어간 선배들의 인생으로부터 배우는 것과 같다. 선배들의 모습을 동경하고 따라가 보는 노력을 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실패 경험을 말해주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들도 흔들리는구나.'를 배우며 위안을 얻고 나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볼 용기를 얻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나 대단한 운동과 움직임을 보고 따라 해야만 우리는 배우는 것은 아니다. 나와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의 움직임 정보를 획득하면서 배운다. 오히려 더 잘 배운다는 이야기도 있다. 피드백으로 나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의 움직임을 보는 것보다 수준이 비슷한 사람의 움직임을 봤을 때 운동수행능력이 향상된다는 보고가 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을 먼저 생각해 보게 된다. 달성 가능한 목표는 몰입의 조건 중 하나다. 나와 크게 차이 나는 수준의 모델을 본다고 가정한다. 그럼 운동이 결코 달성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비슷한 사람을 보면 운동은 몰입 상태에 이를 수 있는, 충분히 달성 가능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운동이라는 과제를 탐구하는 우리에게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닌 함께 배우는 것이다.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 지점도 생각난다. 허무해지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갇히지 않기 위해 '친구'가 필요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그렇게 몰입하고, 친구의 어깨에 서로 손을 얹고 더 나은 개인이 되고 더 나은 운동 공동체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나는 그룹운동의 특장점이라고 생각한다. PT 환경에서는 선생님이라는 모델뿐이지만 그룹운동에선 도처에 모델이 있다. 함께 '운동학습'의 길을 나아갈 '친구'가 있고 조금 더 일찍 운동 길을 걸어간 트레이너가 있다. 그렇게 운동을 배운다. 이내 곧 잘하게 되는 내가 되어간다. 그리고 어느샌가 누군가에게 정보를 주고 있는 내가 되어간다.
글을 써놓고도 참 웃기다. 형님은 내게는 큰 사람이라 내가 든 반기의 예시는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더 감사하다. 이렇게 부족한 나에게 '친구'이자 '스승'이 되어주려고 시간과 지식, 마음을 나눠주시기에 말이다. 따라가 보자고 다짐한다. 아직은 갓난아이인 나이기에 큰 사람의 길을 따라가 보고, 그 길을 걸으며 '친구'를 사귀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보자고 마음먹는다. 그렇게 언젠간 큰 사람으로 보이던 형님과 형님의 스승님, 그리고 내 철학 스승이자 트레이너 친구들과 인문학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싶다. 동시에 현실 또한 잘 살아가는 것이 나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