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맞아 토요일 오전 좋은 기회로 남산에서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4-5년 만에 뵙는, 나에게 처음 케틀벨 스윙을 가르쳐준 선생님과 선생님의 지인분들과 함께하는 달리기였다. 매번 한 번 해보고 싶은 달리기 참여였는데 이번에 처음 되었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남산 국립 극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처음 뵙는 분들과 통성명과 인사를 하고 가벼운 몸풀기를 함께 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서 달리기를 할 남산 순환로에 도착한다.
아침 7시 10분쯤이었지만 이미 정말 더웠다. '덥습'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날씨. 정말 습했다. 그래도 남산은 좋았다. 우거진 수풀이 그늘을 만들고 조금은 바람을 맞을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다. 러닝 계획은 순환로 1바퀴를 조깅 페이스로 뛰고 각자 컨디션에 따라 1-2바퀴를 더 뛰는 것이었다. 코스 거리를 잘 몰라서 '3바퀴 다 뛰고 뒤에 일정 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 뛰어보는 남산 코스. 주말 이른 아침인데 참 사람이 많았다. 확실히 러닝 인구가 늘어남이 실감된다. 아 맞다. 나도 그중 하나다. 함께 가는 분들을 잘은 모르지만 딱 봐도 나보다 러닝 구력이 길어 보였다. 그래서 맨 뒤에서 발만 빠르게 구르며 그리고 코 호흡에 집중하며 천천히 따라갔다. 빠르지 않은 페이스여서일까 주변이 보였다. 우거진 수풀, 풍경, 그리고 사람들. 함께 뛰는 분들이 많았다. 2명, 4명, 여러 명.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각 장애인 마라톤회 분들이셨다. 시각 장애인 분들과 함께 뛰는 페이서분들이 팀을 이뤄 달려갔다. 각자의 페이스로 각자의 이야기를 하며 달려 나가는 모습이 상당히 아름다웠다. 저런 상황에도 달려 나가는 강인함. 힘들겠지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의지도 하고 자신을 토해내기도 하는 용기. 꾸준히 달리는 습관이 내게 자리 잡는다면 나도 달리고 싶지만 혼자 달리기 힘든 분들과 함께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달려 나갔다.
남산 코스는 평소 내가 달리던 홍제천, 한강변과는 다르게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었다. 오르막일 때는 심박이 오르고 하체가 힘들어졌다. 내리막일 때는 에너지를 보충하는 느낌이 들었다. 습한 환경에서도 첫 바퀴엔 이런 흐름이 심박수에도 반영됐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심장 박동과 호흡. 처음 하는 경험이라 신기했고 누군가의 발을 좇아가는 상황이라 너무 어렵지 않았다. 코스 거리를 모르고 출발했지만 도착해 보니 1바퀴에 6km가 조금 넘었다. 생각보다 벅차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습하다. 1바퀴로 만족하고 도망갈까? 다른 분들도 1바퀴 쉬고 다시 뛴다는데 그렇게 할까? 많은 고민을 하다가 2바퀴째를 출발한 분들이 출발하고 조금 있다가 출발했다. '이거 뛰고 바로 집가자 수연아!'
앞서 6:30 페이스 정도로 달려 나갔다. 이번에도 그렇게 뛰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출발했는데 초반 조금 발을 빨리 구르다 보니 앞에 달려 나간 분들이 보였다. 잠시 생각이 든다. '조금 무리해서 잡아볼까?' 이내 포기한다. 조금 빨라지는 것 대비 격하게 심박이 높아진다. 180. 185. 190. 벅차다. 천천히 달려 나가기로 한다. 1km, 2km 달려 나간다. 다른 기분보다 '포기할까?'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오르막길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호흡이 금방 가빠지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오늘 7-8km만 뛰고 싶어서 왔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라며 걷고자 하는 마음이 커졌다. 천사와 악마의 속삭임에 비유할만한 마음속 고뇌가 시작된다. '멈춰' 악마가 말한다. '뛰어봐. 괜찮잖아.' 천사가 말한다. 온 김에 조금 더 뛰어보자고 마음먹는다. 심박계를 덜 보면 덜 힘들게 느껴질 거라고 믿고 앞쪽 바닥을 보고 발만 구른다. 뛰다 보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오르막 두 번이면 끝나던가?' 첫 바퀴의 기억을 더듬어 끝을 가늠해 본다. 끝을 알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근데 그 상상은 틀렸다. 언덕이 하나 더 남아있다. 벅차지만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해 완주를 도전한다.
여기서 신기한 경험을 한다. 친구들이 근육 운동을 엄청 강하게 하면 뜨겁다 못해 차가워진다고 한 적이 있다. 비슷한 경험을 달리기에서 하게 되었다. 500m 정도 남겨뒀을 때였다. 갑자기 몸이 추워졌다. 샤워하고 나와서 에어컨을 쐬는 그런 느낌이 연상되었다. '이 느낌이구나!' 빨리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무언가 큰일 났음도 직감했다. 페이스를 줄였다. 여차 다른 반응이 몸에 또 나타나면 걸어야 했다. 다행히 남은 거리를 잘 달려냈고 도착했다. 바로 수분 섭취를 하며 숨을 돌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젖어있는 몸. 총 거리 12.5km. 뿌듯하게 마무리된 달리기다.
먼저 가야 함을 알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찝찝함이 가득한 운전이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함께 뛰는 재미를 느껴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어서, 그리고 내 한계와 비슷한 구간까지 운동할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