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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서재 Mar 11. 2021

동일본 대지진 10주기

- 그날의 기억


대지진 당시, 나는 심바시(新橋)의 한 고층 건물 15층에서 일하고 있었다.  전에도 지진은 자주 있었지만 이렇게 긴 시간, 크게 흔들리는 지진은 처음이었지. 고층이다보니 진동이 멈춘 이후에도 건물은 더 오래 계속, 흔들거렸을 것이다. (나중에 알았는데 건물이 잘 흔들리는게 더 안전한거라며...)


엘리베이터도 멈추고, 주변 지하철도 멈췄고. 그리고 연이어 속보가 들어왔고, 번역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뒤 사무실 뉴스 모니터에는 쓰나미가 몰려오는 실시간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아 이제 다 끝났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구 남자친구(현 남편)과는 전화연결이 안되니 이메일로 안부를 확인했다(소프트뱅크는 왜 안터지는거냐며). 


정신없이 지진과 쓰나미 기사를 번역하다보니 퇴근 시간은 훌쩍 지났다. 그리고 지하철 운행이 재개되었다는 소식에 일단 집에는 가야겠다 싶어 사무실을 나섰다. 그러나 토에이선 상황을 보니 지하철 타는 것보다 걸어가는게 빠르겠다 싶었고, 중간에 내려(어디서 내렸는지 기억도 안남)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에 있던 교회 기숙사까지 걸어갔다. 아마도 3시간 정도 걸려 새벽에 도착한 것으로 기억한다.


# 그 이후, 교수님을 통해 학교의 안부확인 연락이 왔고, 우리 연구실 소속 선후배, 동기들의 안부를 확인하며 조심하자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았다.


# 함께 살던 목사님은 가족들이 미야기(宮城)쪽에 살고 있어서 핫팩, 라디오, 랜턴, 비상식량 등의 구호물품을 챙겨 미야기로 떠났다.


# 이타테무라(飯館村)를 필드조사하며 박사논문을 쓰던 선배는, 연구 주제를 바꿨다. 이타테무라가 후쿠시마 원전 인근이라 피난지역이 되었고, 선배 연구 주제인 '농업' '마을자치' '마을만들기'라는 내용으로는 더이상 연구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연구주제를 바꾼 선배는 대지진 부흥 연구 영역의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듣기로는 이타테무라 주민들과 도쿄전력을 상대로 집단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 동기 중 외갓집이 후쿠시마(福島)였던 동기가 있었다. 후쿠시마는 복숭아로 유명한데, 동기는 할머니댁에 갔다올 때마다 맛있는 복숭아를 나눠줬다. 대지진 이후 그 맛있던 복숭아는 먹을 수 없었다.


# 대지진 피해지역 아동의 놀이지원사업을 할때, 찌라시 디자인 회의를 한 적이 있다. 담당자는 물방울 무늬는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물방울->물->바다->쓰나미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결무늬, 물방울, 파도와 같은 이미지는 당분간 절대 쓸 수 없다고 했다. 


# 뉴스 번역팀에서 일하던 나는 대지진 이후로, 평소에 써본 적도 없던 멜트다운, 정전계획, 부흥, 오염제거라는 단어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써댄 것 같다. 



한사람, 한사람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부터 이런 재난, 재앙을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할 수 없게 되었다. 모두에게 사연이 있고, 슬픔이 있다.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벌써 10년이라니.....


2012년, 사무실에서 촬영한 도쿄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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