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게 뭐예요? 라는 물음에 대답을 못 해서.

그래서 씁니다. 시간을 아끼지 않는 것들.

by 낱선

브런치에서 당신의 글을 못 본지 며칠이 지났다고 알림이 왔다. 책을 그리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책 편집자로 일하다 보니, 집에 와선 활자 한 글자 보기 싫었다. 영양가 있는 <인간관계론>이나 <군주론> 따위를 볼 시간도 없는데 영양가 제로에 수렴하는 내 글을 쓰고 읽을 생각을 하니 시간이 아까웠다.


맞다, 시간이 아까웠다.

나는 지하철에서 도착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몇 번이고 헤아리는 사람이고, 도착지에 가까워지면 가슴이 가볍게 뛰는 조급한 사람이다. 어느 순간 소설을 읽지 않게 된 이유도 '이걸 보면 시간이 아까워서'도 있지만 결말까지 달려가는 그 시간을 못 참아서도 있다. 언젠가 완독한 책이 손에 꼽는다. 필요한 부분만 읽는다며, 나를 합리화 했지만 사실은 전부 다 읽을 힘이 없어서였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마자 끝도 보지 않고 바로 이직 준비를 한 것도 조급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스타트업 업계에 투자가 막히면서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도 경영이 위태로워졌는데 잠시만 상황을 지켜보자는 경영진의 말에도 일단 다른 곳에 이력서부터 넣었다. 이 위기를 같이 이겨내 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난 내 살 궁리가 먼저인 사람이고, 언제나 '잘 살고 싶어' 조급한 사람이니까.


예전엔 좋아하는 게 넘쳐서 고민이었던 사람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좋아하는 게 없어지고 하고싶은 것만 늘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 라고 욕심은 가득하지만, 진짜 좋아하는 건 없다. 브랜드에 관심 있는 것치고 힙한 브랜드들을 뉴스레터를 통해 한 발짝 늦게 안다. 그마저도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다. 돈 쓰는 걸 아까워하는 궁색한 인간이라 그렇다. 책 읽는 걸 좋아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나마 매거진 읽는 걸 좋아했는데 딱히 사서 보진 않는다. 생각해 보니 자주 읽지도 않았다. 예전에는 영화를 좋아했는데 이젠 영화 안 본지도 한참 됐다. 성격이 급해서 보다가 나무위키에 결말을 검색해 스스로 김을 빼 버린다.


"좋아하는 게 뭐예요?"

모임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말문이 턱 막혔다. 책 읽는 거요, 라고 했지만 최근 읽은 책이 무엇이던가. 깔짝깔짝 댄 책 말고 완독한 책은 작년으로 돌아가도 기억이 더듬더듬 난다. 이렇게 살면 나는 누구인지를 잊어버릴 것 같았다. 이렇게 뭉뚱그려 표현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표현력도 떨어진 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개인은 취향의 집합인데 그 취향이 사라지면 나라는 인간 자체도 사라질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이 그저 필요한 게 있으면 다이소에 가서 가장 값싼 걸 고르는 게 내가 바라던 인간상이었나.


영수증이 취향의 역사라면 내 취향은 다이소와 편의점이다. 이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지금껏 그럴듯한 말로 나를 포장했지만 나는 이 두 군데서 거의 모든 소비를 하는 사람이다. 보잘 것 없고 하찮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이를 기록하는 이유는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솔직한 나는 이런 인간이었고, 이런 취향을 갖고 있었음을 미래의 내가 발견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래서 백스페이스를 누르지 않고 글을 쓴다. 문장의 호응도 맞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그저 써내려가다보니 배설하는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여긴 내 일기장이니까.


길었다. 첫 번째 '시아템'(시간이 아깝지 않은 아이템)은 <꼬북침 플레이밍 라임>이다.

꼬북칩 플레이밍 라임.jpg

미국에서 먼저 생산됐다고 한다. 비슷한 맛의 과자를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보라색 봉투에 새빨간 그 과자. 이름 기억 안 나는 그 외제 과자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나서 요 며칠 동안 편의점을 돌았다. 나중에서야 CU에서만 판다는 걸 알아서 CU만 몇 번 들락거렸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샀다.

꼬북칩 플레이밍 라임2.jpg

맛은 생각보다 매콤하다. 근데 꽤 시다. 매콤한데 시다고 하니까 굉장히 이상해 보이지만 침 도는 그 맛이 꽤 괜찮다. 고춧가루에 라임 한 방울 떨군 맛? 그런데 고추가 외제 고추인 맛? 그런 느낌인데 살짝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꼬북칩보다는 치토스에 더 잘 어울릴 맛이다. 까각까각한 맛이 더 어울리는데 꼬북칩은 너무 소프트하다. 부드럽게 부서지는 느낌이 오히려 맛을 해친다. 꼬북칩은 콘소메 같은 느끼한 맛이 더 잘 어울리는 것같다. (과자 먹은 양으로 학위를 딸 수 있다면 척척석사쯤은 된다)


결론.

나는 꼬북칩 플레이밍 라임 맛을 좋아하는 편이다.

다만, 꼬북칩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건 신상 과자가 나왔을 때 편의점을 도는 거다.

설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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