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라빛 Jan 01. 2021

02. 끝까지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

[서른아홉 뭐라도전기] 이 세상의 남편님들 세 마디만 하소서.



한 해의 마지막 날 새해 안부 인사를 묻는 메시지로 카카오* 화면이 빼곡했다. 속해 있는 단톡 방의 형식적인 이모티콘을 제외하고 딱 한 그룹만이 반갑게 느껴졌다.


“저의 첫 사회생활을 함께 시작해 주신 정신적 지주 두 분께 연말 인사드립니다. 저 오늘부로 퇴사합니다!”


그는 내가 다녔던 마지막 직장 J동기였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었다. 그가 퇴사를 한 것이? 노노. 가장 먼저 퇴사할 것 같았던 그가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그것도 꼬박 11년을 채우고 퇴사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2010년 1월 3일. J에게는 첫 직장이었고 나에게는 여섯 번째 직장이었다. 동기였지만 엑셀과 문서작성법을 가르쳐주던 그는 사회초년생이자 후배이기도 했다. 동기 중 누가 가장 먼저 퇴사를 할 것인가 회식 자리에서 안주삼아 논했고 그때마다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던 친구이기도 했다. 그랬던 J가 장장 11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그 직장에 바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살아남은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끝까지 버틴 것에 대해 존경심이 일었다.


J를 보면 참 많은 교훈을 얻었다. 사실 난 그 직장에서 TOP3 상사 3명과 함께 일했던 유일한 직원이었다. 그리고 동기 중 가장 먼저 팀장 타이틀을 달았다. 죽어라 일만 했던 그 시절 난 참 재미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회사에서 주는 5년 차 유급 안식월을 3달 앞두고 퇴사를 하고 말았다.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끝까지 버티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꼬리표를 뗄 수는 없었다.


그 많던 경력에도 불구하고 ‘개 같은 직장상사를 대하는 방법’에는 서툴렀던 것이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어려운 일이었다.


직장생활의 무수한 기타 등등의 일들을 유일하게 정신력(metal)로 승부해서 이긴 자가 J였다. 팀장에게 업무상 지적을 받고, 사무실에서 졸다가 걸려서 혼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눅 들지 않고 참 유쾌하고 밝았던 친구였다. 내 눈에는 프로답지 못했고 생각 없고 애송이 같았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깨달았다. 직장생활에서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도 전략이고, 아마추어-애송이는 실은 나였다는 것을. J는 프로 직장인 중 위너였던 것이다!


그런 그의 소식을 뒤로한 채, 여전히 구인구직 어플을 드나들고 있다. 9시~6시 직장생활을 다시 하게 된다면 어린이 집 하원 후 2~3시간가량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필요했다. 육아도우미 어플이 요새는 너무나 잘 되어있기에 이런저런 신청을 하고 알아보던 중에 ‘맘 시터’란 어플을 접하게 되었다. 엄마의 신분인 사람들이 아이를 돌보아주는 콘셉트라 지금의 내 상황과도 딱 맞고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잠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일자리였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엄마들이 등원 도우미 또는 하원 도우미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아이 등, 하원 시간에는 일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게 딱 맞는 조건의 시간을 찾기 어려웠다. 혹시나 다른 지역구도 알아보니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내 프로필을 작성해서 ‘시터 선생님’으로 올렸다. 다른 맘 시터와 다른 영어전공과 청소년 상담 경력을 어필하여 보육뿐만 아니라 독서, 미술, 한글, 영어, 창의교육을 할 수 있다고 적었다. 충분히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난 후.

휴대폰 액정에 맘 시터 신청이 들어왔다. 순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게 뭐라고… 회사에 합격이라도 한 것인지... 경단녀 이후 나를 처음으로 원하는 사람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 재택근무로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하다였다. 시간은 오후 1시~4시. 하원 시간과 맞물리긴 했지만 조정이 가능했다. 신청을 수락하면 내일부터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희망적이었다.


그날 오후.

새콩이가 다니는 어린이 집의 급작스런 휴원 통보를 들었다. 20명의 엄마들은 단체로 멘붕이었다. 3월이면 유치원에 입학하는데 1~2월 두 달간 어디로 간단 말인가? 급하게 다른 어린이 집을 알아봤지만 갈 곳은 없었다. 아르바이트라도 시작해보려 했지만 또 LOCK이 걸리고 말았다.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신청받으신 맘 시터 수락 시간이 1시간 남았습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딱 한 가지였다. 수락과 거절의 버튼 사이에서 갈 곳 잃은 손가락만이 방황하고 있었다.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는 신청인의 요청에 내 이익만 생각하고 수락할 수는 없었다.


“먼저 저를 맘 시터로 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개인 사정으로 12월 한 달만 가능합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재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거절이지만 수락의 메시지를 남긴 채 거절 버튼을 눌렀다. 재신청은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나마 ‘뭐라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출발선에 대기하던 중 불발된 상황이었다. 속상한 마음에 그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런데 이 남자 돌아오는 답변이 더 기가 막혔다.


“우리 애 맡기고 남의 애 보는 거야?”


잠시 생각이 필요했다. 그 말이 단순히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그래, 뭐라도 해봐’ 단 3마디 응원의 말이면 충분했다. 그게 아닌 그의 말에 어폐가 있었다.


‘아니 그럼 초등학교 선생님은 다 집에서 자기 자식을 가르쳐야지 왜 다른 자식들 교육을 하고 있나? 코로나로 힘든 이 시국에 의료진들은 다 집에서 가족을 지키지 왜 환자들을 위해서 몇 겹의 방호복을 입고 고군분투를 하겠나? 이타성과 교육철학을 가지고 아이들을 만나는 무수히 많은 방문교사 선생님들은 그럼 집에서 애나 보지 왜 일을 하니?’


저마다의 직업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직업불문. 아파트 경비원, 환경미화원, 택배 배달원 모두 남들이 보기에는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이라 칭하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이는 단순히 돈을 버는 생계유지의 관념을 떠나서 일에 대한 소명과 가치관이 담긴 철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지금 처한 환경에서 최선의 선택은 아르바이트고, 엄마의 경력을 최대한 인정해주는 일이 바로 맘 시터였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의 고충을 덜어줄 수 있고, 잠시의 아르바이트지만 내가 가진 경력을 써먹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의 눈에는 한 달 32만 원 작은 돈이라 여길 수 있겠지만 내게는 그것이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벌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임을 그는 알지 못했다. 단지 용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경력단절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작이자 기회였고 미래의 워킹맘, 커리어우먼으로서 내 삶을 다시 찾고 싶은 의지이자 용기였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남편의 발언에 시름은 깊어졌다.


지인은 아기를 1년 키워놓고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최종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의 말이 ‘그럼 애는 누가 봐?’ 조용히 면접 거절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이 세상의 남편님들. 이 세상의 아이는 엄마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우리도 직업을 가졌고 꿈이 있던 사람입니다. 만약 당신의 와이프가 ‘여보, 이제 일을 해야겠어.’ 말한다면 단 세 마디면 족합니다. ‘그래, 어떻게 도와줄까?’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제주도나 가자 마음먹고 제주도 한 달 숙소를 예약했다. 겨울의 제주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기회구나 생각했다. 찰나의 절망이 다시 희망이 되는 순간이었다.


한 달 후.

계획했던 네 번째 제주살이는 취소되었다. 몇 년만의 한파로 제주는 애월까지 눈이 쌓였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바다가 보이는 제주 숙소가 아닌 팍팍한 도시 전경이 보이는 19층 유리창으로 너머로 내리는 눈을 보고 있다.


한 때는 아침이 바쁜 직장인이었고,

한 때는 저녁이 즐거운 사회인이었다.

한 때는 긴 터널 외로운 경단녀였지만,

한 때를 잘 버텨 끝까지 살아남은 워킹맘이라 말할 것이다.  


누군가는 20~30대 11년을 함께한 직장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기쁘게 샴페인을 터트리는 오늘이지만

누군가는 20~30대 14년을 달려온 직장생활에 다시 이음표를 찍고 싶어 간절하게 글을 쓰는 오늘이다.


2021년 1월 1일 1시. 코로나로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허망하게 1살을 또 먹었다. 이 한 살은 환급받고 싶다.

올 한 해 못다 이룬 꿈과 소망들 오늘부터는 꼭 이루리라. 내년에는 꼭 출간 작가가 되리라는 목표로 2021년 첫 날을 이 글로 마무리한다.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2021년 1월 1일 04시 28분

끝까지 버티는 자가 되자.

매거진의 이전글 39살 '경단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