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 어른 감정] 4화. 산후조리원시 신생아구 수유실로 24
요즘 <산후조리원> 드라마가 인기다.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대본을 썼다고 하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아~ 내가 먼저 쓸걸~!’ 능력도 없는 후회를 하고 있었다. 사실, 내겐 알싸한 첫 출산의 기억 다음으로 신선한 문화충격으로 남겨진 또 하나의 기억이 있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Take 1
2017년 3월, 산후조리원 입실 후 묘한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수유실의 신생아 단체 수유 풍경이었다. 자연출산도 못했는데 모유라도 먹이자는 대체 심정으로 신생아실 콜을 받으며 한걸음에 수유실로 달려갔다. 두 눈을 뜨지도 못한 채 부은 발을 간신히 욱여넣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 좀비처럼 수유실 문을 열었다. 그곳에 신생아 단체급식 풍경이 펼쳐졌다.
새콩이를 걷네 받는 신생아실 옆에는 정육점에나 있을 법한 저울이 있었다. 그 옆 의자에 줄지어 앉아있는 나와 같은 좀비 엄마들이 보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아이를 그대로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저울 옆에는 기록표가 있었고, 저울에 몸무게를 재고 기록했다. ‘3750g’ 새콩이의 몸무게 위로는 다양한 체중이 적혀있었다.
이어서 자리에 앉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만나 자신의 신체부위를 노출시키며 아무렇지 않게 수유를 하고 있었다. 좀비 엄마들에게 자신의 젖가슴 따위야 대수롭지 않았다. 갑자기 매드 맥스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거기에도 수유실 장면이 등장했다. 황폐한 불모지의 땅에서 오로지 신성하게 추대받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마더’들이었다. 풍성한 젖가슴에 유축기를 달고 우유를 뽑아내는 장면을 생각하며 어느새 나도 단추를 풀고 작은 젖가슴을 꺼내고 있었다.
이때부터 젖 물리기 전쟁이 시작되었다. 작은 아기 입 속으로 젖을 물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입을 벌리는 순간 입속으로 쏙 순식간에 집어넣어야만 했다. 어설프게 물렸다간 금세 입에서 빠져버리기 십상이기에 엄마들은 더욱 좀비가 되어갔다. 이때 ‘갓 마더’가 등장했다. 좀비 엄마들에게 그들은 신과 같은 존재! 젖 물리기로 곤혹을 치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어김없이 달려와 아기 입속으로 쏙~ 진기명기를 보여주는 그들은 신생아실 수유 전담사였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설픈 생. 짜. 초. 보. 엄. 마. 들에게 그들은 '육아고수(高手)’ 향미를 물씬 풍기며 영접할 수 없는 아우라는 내뿜고 있었다.
사실 신생아를 담당하는 간호사 선생님들 모두 신이었다. 그들은 모든 이유를 다 알고 있었다. 우유 먹다가 갑자기 토하고, 경기를 일으키는 등의 아이에게 돌발상황이 생겨도 언제나 침착했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민감하고 어려운 신생아를 담당해서가 아니라 그 일을 해내기까지의 경험과 숙련 미가 부러웠다. 세상에 어려운 일과 엄청난 양의 일에도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면 비례하는 실력이 쌓이게 된다. 육아백과사전 ‘삐뽀119’를 읽고 백날 공부한다고 해도 늘 예측불허의 순간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 순간에 발휘되는 것은 ‘이론서 몇 페이지에 있었더라…’가 아닌 몸에 체득되어 반사적으로 대응하는 ‘경험과 노하우’다. 육아의 ‘경험치’가 ‘제로 0’인 내게 그들이 ‘갓 마더’인 이유였다.
Take 2
젖 물리기가 성공하면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에서 1시간까지 수유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했다. 누구에게는 지루하고 누구에게는 행복한 이 시간 동안 내 눈은 아이를 벗어나 잠시 주변 풍경을 훑어보았다. 수유실 의자에 앉아 각기 다른 얼굴의 아기를 들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젖을 물리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곳. 이곳은 산후조리원시 신생아구 수유실로 24, 불 꺼지지 않는 신생아 단체급식 장소였다. 오고 가는 다양한 인물만큼이나 그 속에서 다양한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먼저, 신생아실에서 들리는 각양각색의 울음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울음 끝이 긴 아이, 울음 끝이 짧은 아이. 저마다 열심히 엄마를 찾고 있었다. 대략 30명 정도의 아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다 달랐다. 코가 오뚝한 아이, 입이 작은 아이, 체구가 큰 아이, 다리가 길쭉한 아이. 저마다의 특색 있는 생김새는 특이하게도 엄마를 똑 닮은 모습이었다. ‘우리 새콩이는 어디가 엄마 닮았으려나~?’ 새콩이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다 다르게 생겼지만 공통점이 한 가지 있었다. 여자아이인지 남자아이인지 구분이 안된다는 사실! 성별을 알 수 없는 중성적인 외모란 점 하나는 같았다. 그래서 수유실에서 묻는 대표 질문이 한 가지 있다.
“여자애예요? 남자애예요?”
간혹 “어머~ 너무 이쁘게 생겼다. 여자애죠?”란 질문에 어김없이 웃음이 날아오곤 했다.
“남자애요.”
이모티콘의 키윽 키윽이 발사되는 순간이었다.
다른 생김새만큼이나 젖 먹는 소리와 방법, 잠투정하는 모습까지 모두 달랐다. 힘 있게 먹는 아이, 조금 먹다 마는 아이, 많이 먹는 아이, 먹다가 졸리다고 우는 아이, 먹다가 자는 아이. 그리고 그런 아이를 달래는 엄마들의 방식도 하나같이 다름에 놀랐다. 자는 아이 깨우려 사정하는 엄마, 태어난 지 3일 된 아이를 만지면 부스러질까 소중히 다루며 트림만 30분째 시키는 엄마, 아이보다 휴대폰에 집중하는 엄마, 아이가 울어도 멍하니 지켜보는 엄마,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 그런 아이를 차분히 달래는 엄마. 그야말로 천. 차. 만. 별.이었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이렇게 남의 아이만 바라보다 보면 정작 내 딸 새콩이를 신경 못쓸 때도 있었다. 남의 아이 장점만 눈에 들어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 단점과 아이의 모난 점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저 엄만 완모(완전 모유수유)에 수유량도 많다고 하는데 나와 비교가 되었다. 그런데 저 엄마 유방이 내 것보다 크지 않은가! 아니 조리원 엄마들 중 top of the top이었다.
‘아…젠장… 사이즈를 늘릴 수도 없고…’
Take 3
그러다 보면 어디선가 “찌익~” 수유쿠션의 부직포 뜯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유수유를 마쳤다는 의미였다. 아이가 다 먹었다 싶으면 다시 저울로 가서 몸무게를 쟀고, 먹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늘어야 제대로 수유를 한 것이라고 베테랑 간호사들은 말했다.
“4120g이요.”
“아이고~ 120g이나 먹었네. 우등생이야~ 엄마는 젖량이 많아서 좋겠어!”
수유하던 좀비 엄마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등생에게 향했다. 사실 유방 사이즈보다 내 심리를 더 건드리는 건 묘하게 비교하는 듯한 신생아실 간호사들의 발언이었다. 모유수유에도 우등과 열등이 있단 말인가? 조금 먹는 아이와 많은 먹는 아이의 먹는 양의 차이일수도 있는데 이것을 그램수로 줄지어 우등생을 꼭 가려야 하는 것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그땐 수유실의 시스템에 얌전히도 잘 따랐었다.
묘한 기류가 흐르는 수유실의 오묘한 풍경이었다. 하루가 365일 같은 느림의 시간 속에 엄마들은 동지애가 생겼다. 365일 빛이 꺼지지 않는 수유실에서 새벽시간을 함께했다. 남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양한 감정들을 주고받았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열 달이라는 긴 인고 끝에 아이를 출산했고 수유실에 함께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사골국물처럼 무한하게 쏟아져 나왔다.
연애할 땐 전혀 공감할 수 없던 남자들의 군대 얘기에 이제는 웃으며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의 기억이 좋고 웃겨서만이 아니란 사실을 이제는 알았기 때문이다. 죽을 만큼 힘들었고 처음이라 더 어려웠던 그때의 아픔이 시간이 지나 보니 어느새 웃픈 에피소드였다는 것을. 그래서 남자들에겐 군대 동기가 있다면 여자들에겐 산후조리원 동기가 있다고 말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2017년 3월.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수유실 낯선 풍경이 언젠가 추억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