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 어른감정] 5화. 수유쿠션에 담긴 육아철학-첫 번째 이야기
아이와 엄마가 처음으로 교감하고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는 시점은 모유수유 시간이다. 아이는 엄마의 젖을 먹으며 배를 채우는 것뿐 아니라 젖가슴을 만지기도 하고 심장소리를 듣고 눈을 맞추며 사랑도 먹는다. 하지만 분유를 먹는다고 하여 결코 사랑의 크기가 작아지지는 않는다. 출산 후 당연할 것만 같았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면서 엄마들은 선택과 결정의 기로에 서있게 된다.
처음 작다고 생각했던 딸의 2.5kg 몸무게가 250kg처럼 무겁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용기 없는 선택으로 밤낮으로 수유를 하던 시절,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수시로 고개를 떨구는 탓에 행여 아이까지 떨어트릴까 노심초사했었다. 그때마다 수유쿠션이 단단한 지지대 역할을 해주었다. 단단한 폼이 내장되어 있는 수유쿠션은 엄마가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유아 식탁이 되어주었다. 아이가 엄마 젖을 먹고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든든한 지지대 역할을 해주는 수유쿠션처럼 육아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철학이 필요하다. 내게 처음으로 파도에도 휩쓸리지 않을 육아 철학을 만들어준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Take 1
단체 급식실과 같은 수유실에는 다채로운 풍경만큼이나 엄마들의 다양한 감정들도 올라왔다. 바로 ‘완전 모유수유’를 두고 발생하는 엄마들의 ‘비교 심리’를 둘러싼 감정이었다. <완전 모유수유>란 신생아실 용어로써 아이가 엄마의 모유로 완전히 배를 채우는 것을 의미했다. 병원과 연계된 산후조리원은 모유수유 상담 전담팀이 있을 정도로 모유를 적극 권장했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자연스럽게 엄마라면 모유수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이 주신 유방을 적극 활용해보자고 다짐했건만 현실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 따윈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모유가 자연적으로 나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3시간마다 유축기로 젖을 짜야했고 그래야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을 정도의 젖양이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24시간을 오로지 먹는 것에만 집중하는 신생아를 위해서는 3시간 수유 사이클을 지켜줘야만 했다. 1시간 수유하고, 1시간 유축하고, 1시간 자다 다음 수유 콜을 받는 ‘철인 3종 수유 작업’을 수행했다.
“그냥 분유 먹여!”
병원 보조침대에 누워 자던 알콩이가 외 마디 비명을 질렀다. 언제나 내 선택에 존중을 해주던 그는 이 미친 수유 사이클에 동참하다 반나절만에 화난 좀비로 변해 있었다. 그랬다. 다른 엄마들처럼 자정 이후만큼은 아이를 수유실 간호사들에게 온전히 맡기고 분유를 먹여도 됐었다. 그것도 힘들면 유축기는 다시 상자에 고이 넣어두고 분유를 사러 가도 참 좋을 그림이었다. 밤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사이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엄마들은 편하게 통 잠잤다. 모유수유 하루 딱하고 ‘끝’을 선언, 다음날부터 ‘매운 짬뽕’을 먹는 엄마도 있었다. 나와 너무나 다른 선택이 꽤 충격적이었지만 꽤 평화로워 보였다. 그들의 결정은 용감했다.
Take 2
사실 난 그들처럼 용감하지 못했다. 자연출산을 이루지 못한 내 죄책감은 ‘모유라도 먹이자’는 집착으로 바뀌었고, 이때부터 ‘수유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때는 그들의 선택이 마치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 눈에 비친 내 모습 또한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의 선택이 맞고 틀린 문제가 아니었다. 조리원에 있는 엄마들은 누구나 모유와 분유 사이에서 한 번은 자신과의 갈등을 겪게 된다. 유축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젖양이 풍부해서 ‘완모’ 꿈을 이룬 엄마들도 있었다. 하지만 완모 엄마들 사이로 행복하지 않은 엄마의 모습들도 존재했다. 조리원에 있는 2주 내내 모유수유와 씨름하다 결국 모유양이 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슬퍼한 엄마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힘들게 안 나오는 엄마 젖을 먹느라 힘을 다 뺏고, 결국 분유로 배를 채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었다. 엄마로서 최선의 노력을 한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엄마의 심리상태였다.
A엄마: “최선을 다했지만 난 여기까지 인가 봐. 그래. 이만하면 되었어.”
B엄마: “난 왜 젖양이 적을까?” “저 엄마 말대로 다 했는데 뭐가 문제일까?”
“아가 넌 왜 힘차게 빨지를 못하니… 속상해. 속상해!”
같은 상황이라도 A와 B 엄마의 심리상태는 확연히 달랐다. 난 엄마들의 이 감정들에 주목했다.
‘아이는 엄마의 모든 감정을 그대로 읽고 느낀다.’ 심리학 교과서에 있는 내용이다. 아이는 엄마의 불안심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데 이는 엄마의 표정과 말투, 눈빛 하나에도 알 수 있는 신생아 능력이었다. 출생 직후 모유의 냄새만으로 엄마를 구별하는 능력과 마찬가지로 신생아에게 엄마의 불안한 심리상태 및 감정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그러나 비단 신생아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출산 후 찾아오는 산후 우울감이 자살로 이어지는 산후우울증으로 바뀔 수 있는 중요한 신호탄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가는 듯했다. 정말 다행히도 미친 철인 3종 수유 작업 끝에 완모에 가까운 젖양이 되었고, 모자란 만큼 분유로 대체할 수 있었다. 아이와 충분히 교감할 수 있는 젖양에 만족했다. 이런 내 결정에 새콩이 또한 어려움 없이 엄마 젖을 맛있게 잘 먹어주었다. 미친 듯이 힘들고 몸이 꺼져가도 딸과 눈 맞추며 수유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때만큼은 내가 진짜 엄마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7개월간의 모유수유를 끝내고 분유로 갈아탔다. 이렇게 이야기는 헤피 엔딩으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Take 3
하지만 복병은 따로 있었다. 어느 순간 아기와 노는 것이 즐겁지가 않았고,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더 이상 아이를 보며 웃지도 않고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 내 모습과 마주했다. 외로웠고 혼자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누구인가 나 자신의 존재감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어느 순간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을 그렇게 아이가 옹알이하며 웃어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있었다. 나를 조금씩 좀 먹고 있던 증상은 다름 아닌 ‘산후우울증’이었다.
홀로 감당해야 했던 육아의 부담과 책임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희생이었지만, 고통은 치명적이었다. 그 시간들을 홀로 버티며 정작 내 몸과 감정들은 보살피지 못했던 내 선택의 결과였다. 사실 내게도 매운 짬뽕을 먹을 용기가 필요했다. 모유를 과감히 포기하고 행복한 삶에 [선택과 집중]을 했더라면 산후우울증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다 편하게, 많이 웃으며 아이를 맞이했더라면 말이다. 모유를 포기할 용기도, 짬뽕을 선택할 용기도 없었던 것이다. 내 선택으로 인해 정작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었는데 말이다.
잠자다 아이가 울면 바로 젖을 물렸고, 남편과도 따로 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이가 깰 때마다 충분히 수유가 안 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충분히 먹어야 충분히 자는데 매번 아이가 모유만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아이의 모든 환경에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3시간씩 자지 못하고 깨는 아이에게 화도 나고 미운 마음도 들었다. 3시간에 집착하게 되니 모든 것이 스트레스였다. 충분히 먹지 못하고 자주 깨는 아이에게 자연히 그 화가 돌아갔다.
Take 4
내가 이러면 안 되겠구나 생각이 든 건 일주일 지난 시점이었다. 멍 때리기를 하다 잠시 아이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그런데 아이도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러도 대답이 없었고 방긋 웃던 아이는 없었다.
“왜 저러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나 때문이구나…’
엄마의 깊은 우울감이 아이에게도 전해진 것이었다. 나처럼 웃지 않았고, 이름을 불러도 엄마를 쳐다보지 않았다. 새콩이는 산후우울증에 걸린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순간 울음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그제야 알았다. 제정신이 아닌 딸의 모습에 내 정신줄이 돌아왔다.
‘살아야겠다. 살자. 아이를 위해서라도 살아보자!’
모든 죄책감은 뒤로한 채 오로지 아이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사과했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이제부터 안 그럴게.”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표현했다. 억지로라도 웃어 보였고 계속해서 이름을 불러주며 온몸을 쓰다듬었다. 며칠을 그렇게 했다.
“새콩아~ 엄마 여기 있네~”
오늘은 웃을까 하는 심정으로 다정하게 새콩이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러자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봐주었다. 그리고 입꼬리가 올라가며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마워… 고마워…”
아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목구멍이 조여왔다. 가슴에서 뜨거운 용암이 올라왔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래, 이 거면 돼. 다른 게 뭐가 필요하니? 엄마는 너만 있으면 돼’
모든 것이 내 욕심이었고, 나 자신을 못 믿었다. 조리원에서 늘지 않는 모유에 집착했던 엄마와 나는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내 감정과 욕구에만 충실했던 것이다. 새콩이 마음은 어떤지, 젖 먹는 표정은 어떤지, 충분히 먹는지, 배가 부른 지, 충분히 잠을 자는지… 아이의 몸짓 눈짓을 들여다보아야 했다. 내 마음에 ‘나’로 가득 차 있던 불안, 욕심, 외로움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새콩이’가 웃고 있었다.
Take 5
어느 날 찾아온 산후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되찾은 ‘아이의 웃음’을 통해서다. 불안을 비우고 아이로 채웠고, 외로움을 비우고 사랑으로 채웠다. 그 날 이후 난 다른 엄마가 아닌 내 감정을 돌보았다. 남의 아이가 아닌 내 아이에게 집중했다. 새콩이가 건강하고 웃으면 다른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마음을 비우니 여유가 찾아왔고, 비록 내 아이의 부족한 점이 보일지라도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줄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새콩이와 눈을 맞추며 교감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보니 알게 된 사실은, 모유수유보다 중요한 것은 엄마와 아이의 올바른 애착관계에 있었다. 어쩌면 새콩이는 엄마의 모유보다 엄마의 눈을 보며 따뜻한 젖가슴을 만지는 그 시간이 더 좋았던 것이다. 새콩이 손에는 지금 분유병을 들려 있지만 어느 때 보다 밝고 행복하게 웃고 있다.
산후우울증을 통해 체득한 첫 번째 육아 철학은, 그 후로도 많은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엄마가 힘들면 아이도 힘들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2017년 7월
매운 짬뽕과 산후우울증의 관계를 생각하며.
매운 짬뽕을 먹은 용감한 선택을 위하여.
엄마가 행복한 선택을 위하여.
치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