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모든 것은 두근거린다. 씨앗은 땅속에서, 꽃들은 햇빛을 만나, 나무는 바람을 만나, 나는 너를 만나 두근거린다.
- 당신이 사는 달 中
2017년 가을 마지막 낙엽이 떨어진다. 언젠가 공원에서 겨울의 문턱에 서있는 나무들을 보며 생각했다. 풍성하고 찬란했던 잎사귀들을 왜 다 떨구는 걸까?
봄에는 꽃을 피우고 여름엔 푸르렀다가 가을엔 화려하게 치장을 했던 그대인데 쭉 뻗은 가지들만 남긴 채 홀로 겨울잠을 자는구나. 결코 외롭지 않은 그대여. 편히 쉬소서.
겨울의 나무는 결코 죽어 있지 않다. 생명력을 품고 살아있다. 추수가 끝난 논 자락, 겨울잠 자는 곰, 지팡이 든 할머니 이들이 초라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운 이유다. 잠시 쉬어 가며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다. 봄날 새 옷을 입고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잠시 쉬어 갈 뿐이다.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 오듯 인생의 사계절, 생로병사 우리 삶에는 저마다의 계절과 의미가 있는 것이다.
11월 가로수 나무들은 그렇게 가을 잎을 떨구고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가만히 숨소리를 들어본다. 억만 톤의 살아있는 에너지를 내뿜는다. 땅속에, 공기 중에, 하늘에, 햇빛에, 손끝에서 일렁이는 생명의 기운을 들이마신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렇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두근거린다. 빨강 노랑의 봄, 초록 여름도 좋지만 찡한 코끝으로 들어오는 겨울의 냄새가 특히 좋은 이유다. 겨울의 숲을 거닐면 내 심장이 뛰고 영혼이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여의도 길거리를 거닐고 있다. 갑자기 허기가 졌다. 해장국, 감자탕… 불 꺼진 식당들. 한산한 도로변. 주말엔 이곳도 쉬어 가는가 보다. 한참을 배회하다 초밥집을 발견했다. 만원의 모둠 초밥.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서 따뜻한 온기와 후한 인심이 느껴졌다. 추운 일요일 저녁밥 집 찾아 헤맨 내 마음을 녹였다. 주머니 걱정 없는 만원의 모둠 초밥을 주문했다. 따뜻한 보리차를 한 입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테이블을 메운 손님은 나 혼자였다. 시계를 보니 저녁 8시였다. 첫 손님인가… 조용한 적막 사이로 한 사람에게 시선이 갔다. 정갈한 흰색 요리복, 정직하게 써 올린 남색 모자, 안경을 쓴 셰프의 양 손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비록 한 접시에 만원 하는 일식집일지만 한 명의 손님을 위해 일찍부터 문을 열고 장국을 데우며 모자를 눌러쓴 그의 모습에서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순간 ‘심야식당’에 들어온 ‘고독한 미식가’가 된 기분이었다.
“시시한 일상도 깊이 관찰하다 보면 하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 다니구치 지로, <고독한 미식가> 만화가
드디어 내 앞으로 접시가 도착했다. 군침을 삼켰다. 이내 루틴 한 손놀림으로 고추냉이 종지에 간장을 붓고 젓가락으로 섞어 먹을 준비를 마쳤다. 뜨거운 장국을 한 입, 두 입 마시고 접시를 노려보았다. 항상 하는 고민이다. “무엇을 먼저 먹을까?”
고추냉이 가득 찍어 초밥 한 입, 코끝 찡한 광어 초밥 한 점이 이 추운 계절과 묘하게도 잘 어울렸다.
싱싱한 생새우의 단 맛, 느끼하면서도 새콤한 연어초밥, 유일하게 입안 가득 만족스러운 계란초밥. 한 점, 두 점 먹다 보니 늘 그렇듯 아쉬운 마지막 한 점의 순간이 찾아왔다. 입속에서 맴도는 마지막 밥알 하나까지 음미하며 감았던 눈을 떴다. 아쉬움은 리필 한 그릇의 장국으로 대신했다.
나무가 모든 잎을 떨군 채 겨울잠을 자듯 삶에도 에너지를 비축하는 휴식이 필요하다. 그 휴식은 매일의 삶 속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온전히 나만의 시공간에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숨 쉬는 운동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적막함, 고요함을 찾아 말이다.
매일의 날씨가 다르듯 몸과 마음 상태도 매일 다르다. 슬픈 날도 있고, 기분 좋은 날도 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는가 하면 늘 보던 거리 풍경이 색 다르게 보여 마음이 설레는 날이 있다. 늘 슬픈 날도 늘 행복한 날도 없다. 울고 싶은 날도 있고, 마냥 웃고 싶은 날도 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삶이다.
육아도 매일이 다른 삶과도 닮았다. 오늘이 슬프고 힘들다고 내일도 그러하다는 보장은 없다. 언젠가는, 내일은, 웃는 날이 올 거란 걸 알기에 오늘 고단하고 울고 싶어도 눈물 참으며 견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