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맛. 화장실 만두

[식탁 위 어른감정] 8화. 휴게소 아닌 화장실 만두라고 들어는 봤나

by 일상라빛

*등장인물: 알콩(반려자) 달콩(작가) 새콩(똥강아지)

*알콩달콩새콩이 가족 그림육아일기입니다.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 너와 나의 거리




포인트로 무료 숙박을 할 수 있어서 주말에 잠시 일상을 떠나 도시 여행을 왔다. 알콩이는 내게 자유시간을 주었고 백화점 쇼핑이라는 원대한 계획 대신 근처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2층 창 밖의 밤 풍경은 꽤 따뜻했다. 좋은 걸 보면 사랑하는 이가 떠오른다. 자연스럽게 휴대폰 사진첩을 뒤적거리며 환하게 웃고 있는 새콩이 사진들을 눈에 담았다. 이게 얼마만의 자유시간인데… 고개를 가로저으며 재빨리 액정화면을 닫았다. 한 블록 너머의 그리움은 잠시 주머니에 넣어두기로 했다.


커피와 맥주. 맥주와 커피. 고민 끝에 따뜻한 페퍼민트 차를 주문했다. 향긋한 민트 향이 얼어 있던 입과 몸을 녹인다. 분명 따뜻한 차인데도 마치 뜨끈한 설렁탕을 마시듯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 허.. 스릅”


감성에 취해보는 이 밤
외롭지만 쓸쓸하지 않은 밤
혼자지만 가슴 설레는 오늘 밤
너와 나를 새겨본다.


앞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다.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손으로는 노트북 타이핑을 치고 있었다. 그의 눈도 나와 같이 이 밤의 정취를 즐기고 있음이 느껴졌다.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 너와 나의 거리. 창 밖 거리엔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들이 오가고 있었다.


결심해서 얻은 고독은 약이고 선물이다. 피하지 말고, 고독의 이불속으로 푹 잠겨보라. 그 고독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살피고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는 힘까지 키워진다.

- 신현림, 시가 나를 안아준다


작가 신현림의 말처럼 인간은 고독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성장한다. 내면의 성찰, 결심과 도전, 시작 모두 고독 속에서 씨앗을 틔운다. 사색, 사유, 혼자 있는 시간과 생각이 고독으로 응축된다.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소중하다. SNS 등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이 일상화된 요즘일수록 혼자 있는 시간은 더욱 절실하다. 자신이 무얼 좋아하고, 꿈꾸는지, 무얼 해야 할지, 어떤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지 모두 고독의 과정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얼마나 고독한가?
얼마나 고독을 즐기는가?
고독을 통해 얼마나 성찰하는가?


자문(自問) 해 보아야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렸을 때부터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불행인 이유는 가족 중 누구도 내 진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행인 이유는 고비마다 선택도 책임도 혼자 짊어져야 했다는 것이다. 외로웠지만 감당해야 했고 감당한 시간만큼 외롭지 않게 되었다. 덕분에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해졌다. 혼밥, 혼술이 유행하지 않던 시절, 삶의 중요한 페이지마다 혼자 고독을 삼켰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웃음을 팔며 결론 없는 시간을 낭비할 바 에야 혼자가 나았다. 적어도 의미 있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으니까.


일, 사람, 스트레스에 치일 때면 결심해서 나와의 약속을 잡았다.


점심시간 한적한 곳에서의 샌드위치, 커피와의 시간을 즐겼다. 책을 읽었고, 거리를 바라봤고, 하늘의 구름을 세어보았다. 시기와 질투, 상사의 막말, 악플에 상처 받은 만큼 고독한 시간이 절실했다. 격려, 칭찬에 목마른 만큼 고독한 시간은 소중했다.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Bodhi)을 얻었듯이 고독의 나무 아래서 삶의 이유와 목표를 얻었다.


고독한 시간이 없으면
시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시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의미도 이해할 수 없다.

- 수잔나 타마로, <밤>



고독을 통한 사색과 사유를 천천히 씹어 넘겼다. 여백 한 입에 질문을, 여백 두 입에 느낌표를, 여백 세 입에 마침표를 찍었다. 다시 허기가 졌다. 생각이 복잡할 때 걷기 운동을 한다. 걷다 보면 힘든 것 밖에는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힘들면 배가 고프고 밥으로 허기를 채운다. 어두웠던 사념(思念)은 행복의 감정으로 채워진다. 고독도 마찬가지다. 삶의 물음표가 하나의 점으로 바뀔 때면 허기가 진다. 이제 일어설 때였다.


돌아오는 길에 만두집을 발견했다. 정확히는 분식집이었다. 추운 겨울 직장인의 허기를 달래 주듯 국수도 팔고 소주도 파는 곳.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마침 찜기 뚜껑을 여는 사장님의 두툼한 손에 마음이 홀려 주문을 하고 말았다.


“고기만두 하나, 김치만두 하나요.”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을 알콩이와 함께 먹을 생각에 기쁨과 함께 군침을 삼켰다. 카드키를 대고 슬며시 문을 열었다. 8개월 새콩이는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알콩과 눈이 마주치자 싱글거리며 손에 들린 만두 봉지를 들어 올렸다.


“뭐야?”

“만두! 같이 먹자!”

“…! 나 못 먹는 거 알잖아.”

“…? 응??”

“당뇨위험 있다고 얘기했잖아!!”

“아… ”

"어이.. 달콩.. 실망이야"

"쓰미마생..."


설렘도 잠시 혼자 속 편하게 먹고 올 걸 후회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감정은 참 컨트롤할 수 없다. 내 의자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이 바뀌는 순간 온순했던 감정이 어떻게 쭈글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측 실패! 오랜만에 둘이 오붓하게 야참 행복을 즐기는 상상은 고이 접어두기로 하고 만두 봉지를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 발걸음은 깃털처럼, 마음은 더 무겁게 조용히 문을 닫았다. 세면대 위에 만두 봉지를 펼쳤다. 김치, 고기만두의 향연과 순대의 피날레를 혼자 즐기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어쩌겠는가!


“챱챱. 음냐. 음냐. 꿀꺽”


눈치 없이 맛은 있었다. 너무나도. 허기인지 허전함인지 모를 배속을 허겁지겁 채웠다. 앞에는 세면대, 뒤로는 변기가 있는 이곳은 화장실. 휴게소 아닌 화장실에서 만두가 웬 말이더냐! 호텔 화장실이라 다행이었다. 남사친A의 군대시절 이야기가 떠올랐다.


"야, 왜 초코파이를 화장실에서 먹냐?"

"배고프니까"

"다른데 많잖아"

"몰래 먹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잖아"


그랬다. 화장실은 몰래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냐곰냐곰. 쩝쩝. 입속의 진자운동은 계속 되었다. 함께지만 따로 있는 이 광경 낯설지만 익숙했다. 입덧 하는 와이프의 눈초리를 피해 베란다에서 혼자 짬뽕을 먹었다던 남사친B의 이야기도 구구절절 와닿는 순간이었다. 혼카페, 혼시간, 혼만두. 오늘은 혼파티 축제로구나. 에헤라 디야~~







2017년 11월 11일

혼자지만 맛있었던 화장실 만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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