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위 어른감정] 3화. 그렇게 난 엄마가 되었다.
새콩이가 태어난 날을 잊지 못한다. 어느 부모가 첫 자식 태어난 기념일을 잊을까? 하지만 나에겐 슬픔과 기쁨이 공존한 알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때는 2017년 3월 9일. 예정일이 이.틀.이.나. 지나도록 새콩이는 나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통 첫 아이는 늦으면 15일까지도 늦게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있었지만, 내 경우가 되고 보니 마음가짐이 여유롭지만은 못했다. 이틀이 한달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조급했다. 문득 임신 막바지에 이르러 의사선생님의 권유로 줄넘기를 했더니 애가 바로 나왔다는 친구의 옛 말이 하필 떠올랐다. 근처 공원으로 가서 뜀뛰기 운동을 몇 번 했는데 가랑이 사이로 뜨끈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이게 뭐지?” 감이 1도 안온 나는 운동을 이어갔고 걸어서 집까지 오는 내내 액체흐름은 계속되었다. 뒤늦게 병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때서야 양수가 터져버린 사실을 알았다. 그때 난 드디어 시작이구나 쾌재를 불렀고, 내 실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연출산, 하프노버딩. 평화로운 출산. 임산부라면 한번쯤은 이상으로 품었을 단어였다. 나 또한 그랬다. 첫 아이니만큼 아이가 즐거운 생일을 준비하고 싶었다. 라마즈 호흡법, 부부요가 및 마사지, 태어나면 읽어줄 편지까지 완벽한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겁이 많은 남편은 호기롭게 동의했지만, 나중에서 알고보니 무척이나 무서웠음을 털어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연출산실에 한발도 못 디뎌보고 응급실에서 재왕절개 수술로 새콩이는 태어났다. 저녁때 심박동수 체크 시 갑자기 수치가 떨어지는 바람에 응급으로 수술실에 들어가야만 했다. 탯줄이 목에 감겼을 수도 있다며 지금 당장 수술을 해야한다고 의사는 말했다. 자궁이 열리는 신비로운 경험을 곧 하게 되리라는 설레임은 곧 수술실로 가야한다는 두려움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난 침대 커튼을 닫고 울기 시작했다. 의사, 간호사, 남편은 모두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지켜봤다. 마지막까지 자연출산을 하고싶다는 내 욕심의 끈을 놓지 못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잠시후,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발가벗겨진채로 누운 기억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이것이 내 출산의 기억 전부였다.
새콩이는 2.5kg 작디작은 몸무게로 태어났다. 여차했으면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을법한 몸무게였다. 빌어먹을. 이렇게 작았으면 먹고싶던 짜장면이라도 먹었을텐데. 자연출산을 타이틀로 건 병원은 애가 너무 크면 출산이 어렵다고 겁을 주었고, 하루 먹는 양까지 조절해가며 다이어트를 시키지 않았는가!! 어이가 없었다. 초음파로 측정한 몸무게가 마이너스로 완전히 엇나갔고 새콩이는 나올 준비조차 하지 않았는데 엄마란 사람은 뜀뛰기나 하고 있었으니 할말이 없었다. 부끄럽고 미안했다.
결국 환화게 웃으며 첫 딸을 마주하는 내 꿈속 환희는 느껴보지도 못하고 마취약에 취해 새콩이 태어나는 순간을 보지도 못했다. 너무나 슬펐다. 알콩이는 수술실에 들어간 아내와 딸의 건강을 걱정하며 두려움에 떨었고, 탯줄을 잘랐는지 기억도 하지 못했다. 눈을 떠보니 병실이었다.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배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고,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자연출산 동기들은 다 성공했는데 왜 나에게만 이런일이 일어났을까? 이유를 알았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탯줄은 다행히 목에 감겨있지 않았고 딸은 작지만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걸로 되었다.
잠시 후 하얀 천에 감싸진 작디작은 아이가 내 품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우주의 중력처럼 모든 생각들이 멈췄다. 체온유지를 위해 작은 모자를 쓴 딸의 모습, 엄마 젖 냄새를 찾아 쉬지 않고 오므리는 작은 입술, 자잘한 주름들이 요동치는 작은 이마, 이 모습을 보려고 엄마가 된 것이었다.
‘자연출산이고 재왕절개 수술이고 뭐가 중헌디, 아프지않고 건강하게만 태어났으면 되었지.’
‘아가야, 미안해. 이기적인 엄마라서. 이렇게 엄마 곁에 와줘서 고마워.’
Sorry but thank you. 아주 잠깐 미웠던 아이에 대한 내 감정이 부끄러웠고 마음이 아팠다. 행여 그 미움의 감정이 딸에게 전달되지는 않았을지 덜컥 겁이났다.
“1시간 이내에 엄마 젖을 물려야 하는데, 엄마가 안 깨어나는 바람에 기다렸어요.”
간호사의 말은 화살이 되어 심장을 관통했다. 그 쓰라린 마음은 무려 20cm칼자국이 있는 갓 수술한 배를 움직이게 했다. 금방이라도 내장들이 튀어날올 것만 같았다. 극심한 고통이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움켜쥔 두 손을 이불을 밧줄삼아 잡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새콩이에게 첫 젖을 물렸다. 엄마의 힘이었다.
그 순간 새콩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있는 힘껏 젖을 빨기 시작했다. 눈은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면서 말이다. 엄마 달콩이 딸 새콩이가 처음으로 눈을 마주했다.
‘아, 당신이 내 엄마군요. 반가워요. 보고싶었어요.’
모든 일에는 원인이 따른다. 그리고 모든 일에 원인을 찾아내야만 직성이 풀렸던 내게 출산의 과정은 때론 원인이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음을 깨닫게 한 계기였다.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나에게 있었고 조바심이 불러온 결과였다. 그리고 때론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줄 때도 있다. 딸이 건강하게만 태어나준 것에 대해 감사했다. 비록 내 자궁엔 가로를 횡단하는 20cm 칼 자국이 있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모든 일에는 순리대로 따라야 함을 몸소 새겨준 하느님의 뜻이다 생각하고 있다.
Thanks God~! 하느님 감사합니다.
2017년 3월 9일
새콩이 첫 출산 알싸한 맛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