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맛. 호텔 라운지보다 라운드 식탁

[식탁 위 어른감정] 2화. 해운대 품은 도다리회 한 점 노을의 맛

by 일상라빛
02_호텔 식 도다리회.jpg 호텔 라운지 부럽지 않은 라운드 식탁에서, 해운대품은 도다리회 한 점 노을의 맛



1년만에 다시 찾은 부산. 몇 안되는 추억의 장소 중 하나다. 생각해보니 30대를 함께한 여행지였다. 나는 특히 바다를 좋아한다. 생활전선에 일찍부터 뛰어든 내게 20대는 주야로 대학등록금을 벌기 바빴다. 30대가 되면서 사회생활의 고단함과 스트레스로 마음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밤 기차를 타고 정동진을 찾았던 기억이 났다. 그때 남자친구가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한데, “꼭 어디로 떠나야지만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건 아니야.” 그 말의 의미를 지금은 알고 있다. 장소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라는 꽤 철학적인 말이었으나 그 때의 나는 떠나야만 했다.


특히 철썩이는 파도소리는 마음 속 깊은 곳의 걱정거리를 씻겨주는 효과가 있었다. 추의 움직임처럼 왔다 갔다 일렁이는 파도의 움직임은 ‘멍 때리기’ 좋은 피사체였다. 백사장을 거닐다 보면 왔다리 갔다리 하는 내 마음도 어느새 갈피를 잡고 안정을 찾았다. 결론은 다시 잘 해보자! 원점으로의 복귀였지만 마음가짐이 다시 리셋되었다는 점이 달랐다. 그 때가 2010년이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다시 찾은 정동진은 달라진 내 모습만큼이나 많이 변해있었다. 기후변화를 몸소 체험 한 첫 번째였다. 드넓었던 백사장은 1/3로 줄어들어 있었고, 심란했던 마음은 배가 되어 돌아왔었다. 그 후 마음 정리 장소로 부산을 택했다.


탁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초고층 빌딩들이 들어서며 부산 또한 변화가 찾아왔지만, 여전히 해운대 바다는 영혼을 적셔주는 애정의 장소였다. 특히나 조선호텔에서 바라보는 바다 뷰는 언제 보아도 예술이었다. 바다 위로 아스라히 떠오르는 새벽일출은 물론 하늘 위로 레드 빛 수놓는 저녁 6시~8시 사이의 일몰 뷰도 참 아름다운 장소였다. 변화무쌍한 내 마음은 변화하는 바다모습을 보고 나면 차분해졌다. 백사장 끝에 보이는 달맞이 공원과 숲산 사이로 적당히 세워진 빌딩들, 그리고 야자수 나무들, 그 앞으로 펼쳐진 광활한 백사장, 이 모든 것들을 품고있는 해운대 바다는 태교여행 장소로도 그 추억을 함께했다. 결혼 후에도 남편과 함께 휴가때면 늘 찾았다. 싱글이었던 20대, 사랑하는 사람과의 30대, 그리고 셋이 된 지금 다시 찾은 부산바다는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자유롭던 시절처럼 알콩과 함께 달빛 바다가 보이는 라운지에서 샴페인과 연어샐러드를 먹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 우리 알콩달콩 가족에게도 생긴 변화였지만, 가장 큰 변화는 새콩이와 함께라는 점이었다. 8개월된 딸과 모든 것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사전준비’가 꽤 길어야만 했다. 일단, 수시로 기어다니며 식탁 위를 놀이터 삼는 새콩이와 식당에서 밥을 먹는 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저녁 메뉴는 무엇으로 할지부터가 식사준비의 첫 시작이었다. 알콩이는 열심히 웹 서치를 해서 적당히 후기가 좋은 횟집을 골라 회 포장을 해오기로 했다. 그 사이 나는 냉장고에 있던 새콩이 이유식을 호텔에 부탁해서 데워달라 부탁했고, 초인종이 울림과 동시에 밥을 먹이고 씻기고 옷을 입히기까지 일사천리로 움직이기 바빴다. 이미 온 몸에는 땀이 흘러내렸지만 새콩이를 아기침대에 옮기는 것으로 두 번째 식사준비는 끝이 났다. 이제 내 몸을 1분만에 씻어내고 머리는 수건을 두른 채 서랍에 있는 모든 식기들을 꺼내 식탁 테이블에 옮겼다. 다시 초인종이 울렸고 환호성과 함께 도다리회가 도착했다.


메인 도다리회, 맥주와 소주(오늘은 소맥), 해삼, 멍게 서비스까지 올려 놓으니 한없이 작은 테이블이었지만 분위기를 내기에 완벽한 라운드 식탁이었다. 드디어 입으로 들어가는 도다리 회 한 점 맛은 노을의 맛이었다. 서서히 색깔을 달리하며 저무는 노을 빛처럼 입 속에 영원히 남고 싶은 맛이었다. 맛과는 다르게 회를 먹는 속도는 일출의 속도처럼 빠르게 입속으로 직행해갔다. 그렇게 허기를 채우는 회 몇 점을 먹고 있는 사이 알콩이는 “도다리회가 4만원인데 서울에서는 이정도 가격에 이 맛으로 못먹는다. 대신에 쓰끼다시가 없지만 맛은 일품이다.” 냠냠쩝쩝 대화를 이어갔다. 창 밖으론 이미 해가 저물어 어둑해졌고, 광안대교의 황홀한 조명이 빛나고 있었다.


바다뷰 식탁, 라운드 테이블 위에 놓여진 바다의 맛, 알콩달콩 마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이 저녁시간이 참 행복했다. 호텔 라운지 보다도 황홀한 호텔식 도다리회였다! 이 순간 만큼은 디너뷔페가 전혀 부럽지 않았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우리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새콩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응, 응!” 집에서 가져온 아기의자에 앉아있던 딸은 이제 자기를 내려놓을 시간이라며 강력한 의지의 눈빛을 보내왔다. “아… 조금만 더 앉아있지..!” 결국 의자를 탈출하다시피 나온 새콩이는 바닥의 카페트를 탐색하기 시작하더니 TV 리모콘을 빨았고, 급기야 저녁식사 테이블을 덮쳤다. 소중한 도다리회 한 점이 떨어질 위험을 직감하자 알콩이는 새콩이를 앉아들었다. 휴~ 여유롭던 저녁식사시간은 끝이 났지만 다행히 회는 살렸다. Thanks God~!!


"새콩아~ 10년 후엔 셋이서 조개구이 먹으러 가자꾸나. 20년 후에는 우리 알콩달콩새콩 함께 도다리회를 먹을 수 있겠지? 엄마는 말이야. 비싼 호텔 뷔페보다 지금 너와 함께 하는 이 식탁, 우리 세 가족이 함께 있는 2평의 공간이 더 의미있단다. 엄마가 좋아하는 소주맥주도 있고 말이야~ 후훗"


소맥의 기운이 스물 스물 올라오며 내 마음에도 찌릿한 감정이 올라왔다. 언제와도 늘 따뜻한 바람, 햇빛, 파도, 공기로 맞이해 주는 이곳, 내가 부산바다를 사랑하는 이유였다.




2018년 10월 29일

해운대 바다 품은 호텔 룸 라운드 식탁에서

도다리회 한 점 노을의 맛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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