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 어른감정] 1화. 8개월 딸의 식탁은 시간장소를 불문하고
부산가는 여행 길, 차안에서 책을 읽으며 남은 손은 여유롭게 딸에게 분유병을 물리고 있었다. 주말을 제외하고 처음 맛보는 휴식기였다. 문득 일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달콩이 4개월 때의 일이었다.
8개월 딸의 식탁은 시간장소를 불문했다. 그가 먹는 곳이 식탁이며, 그가 먹는 시간이 식사시간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유일하게 나갈 수 있는 곳은 아파트 단지 산책 뿐이었던 시절, 한 인도 여인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나와 같은 유모차를 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다른 풍경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겨울왕국 엘사처럼 간결하게 땋은 머리에, 웬만한 여성이 소화하기 힘든 비비드한 오렌지컬러의 사리(인도전통의상)를 입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에 유독 인도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의상이 생소하진 않았다. 천천히 시선을 돌려보니 유모차에는 달콩이 보다 더 어린 갓난 아이가 누워있었고, 자그마한 아이의 입으로는 젖병이 물려져 있었다. 그 모습이 낯설고 생소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젖을 물리거나 분유를 물리려면 아이를 품에 앉는 것이 정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유모차에 아이를 눕혀놓고 한 손으론 젖병을 물리고, 다른 한손은 우아하게 옷의 레이스를 만지고 있었다. 유모차만 없다면 누가 그를 갓 아이를 낳은 여성으로 보겠는가? 저 멀리 풍경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그의 시선은 압도적으로 여유 그 자체였다! 같은 엄마인데 어쩜 이리도 다를수가 있단 말인가! 그로부터 불과 50미터 거리에 있던 나는 졸지에 육아에 찌든 누.가.봐.도. 아.줌.마.였다. 쾡한 눈가와 다크서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함을 견딜 수 없다는 시선이 내 모든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때 내 안에 들끓는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나는 왜 저렇게 안되지? 나는 왜 저렇게 여유롭지 못하지?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문제인가? 그를 지켜보는 짧은 순간에 쉴새없이 나를 질타하는 질문들이 머리를 쿵쿵 두드리고 있었다. 신선한 문화충격이었다.
그로부터 5개월 후, 한 손으로 밥을 먹으며 한 손으로 유모차에 누워있는 달콩이에게 분유를 먹일 수 있는 ‘여유와 노련미’가 나에게는 생.겼.다. 그리고 지금 달리는 차 안에서 창 밖 풍경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엄마가 주는 분유에 딸은 흡족해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일인 경우가 육아에는 대부분이다. 육아에도 하수, 중수, 고수가 존재하는데 다만, 하수일때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다급한 마음뿐이었다. 지난 5개월동안 어느덧 나는 중수가 되어있었고, 제야의 육아 고수를 찾아 오늘도 난 여행길에 올랐다. 한 손에는 젖병과 기저귀로 가득한 가방을 들고서 말이다. 어딘가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2017년 10월 29일
카시트가 식탁이 되어버린
그러나 마음만은 여유로워진
부산가는 차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