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맛. 에피타이저.Prolog

음식 그 이상의 모든 맛에 관한 이야기

by 일상라빛

[에피타이저: 프롤로그]



밥을 먹는다는 것은

공허한 '허기'를 달래는 것 외에도

바쁜 몸과 마음을 '잠시' 쉬어가는 휴식이기도 하다.

간헐적 단식, 다이어트, 1일1식 등

세끼 다 챙겨먹기 바쁘고 힘든 현대인의 삶에서

'식탁'이 가지는 의미는 더욱 소중하다.

- 일상라빛, [On the Table] 하루 한끼, 나를 위한 즐거움 中




식탁 위에 살포시 올려보는 하루의 감정 이야기


식탁 위에선 모든 이야기가 오간다. 그리고 이야기 저편에 묵혀 두었던 3년치 감정들도 살아난다.

웃고 울며 때론 싸우기까지 하는 밥상머리 위에서 ‘감정들’은 밋밋한 음식에 조미료가 되어 감칠 맛을 더한다.


2017년 10월,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태어난 해였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손바닥만한 크기의 노트 몇권이 계기였다. 한편에 그림을 그리고, 다른 편엔 그날의 감정을 담아내기에 딱 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그림일기는 시작되었다. 지난 날의 일기장을 넘기다 보면 그때 그날의 감정들이 덮치며 오르가즘 못지않은 찌릿함과 뭉클함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딸의 성장사진이자, 잘나갔던 싱글 여성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자, 엄마로서 포기한 삶에 대한 두려움이자, 꿈과 미래에 대한 동경이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림 배경이 대부분 식탁 위(on the table)라는 점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새로운 감정들과 영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까? 유독 식탐이 많고 맛있는 것만 찾아먹는 미식가인건 남편도 인정했다.


‘한끼를 먹어도 멋있게, 한입을 먹어도 맛있게 먹자주의’였던 내게 아이를 낳으면서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식탁은 그저 끼니를 채우는 아까운 시간이었고, 음식은 비상식량으로 전락해버렸다. 영혼의 안식처였던 식탁은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의 배경이 되었고, 하루 세번 아이가 먹다흘린 반찬을 줍는 여인으로 등장해야했다. 엄마의 육체적 고단함은 1도 모른채 종일 방긋 웃는 아이를 보며 마냥 웃지 못하는 육아현실이었다.

낭만주의 밀레의 작품 『만종』『이삭줍기』가 떠올랐다. 무사히 추수를 끝낸 수확의 감사함을 표현한 듯 보이지만, 하루 종일 일한 손에 주어진 건 떨어진 이삭뿐이라는 힘든 노동현실을 반영한 그림 말이다. 이상과 낭만은 없다. 하지 못하고, 이루지 못하고, 갖지 못한 삶에 욕구불만이 필연적으로 식탁 위에서 터져나왔다. 그것은 하루 잘 버텨온 ‘어른의 감정’이었다.


옛말에 아이를 낳아야지만 진정 어른이 된다고 했다. 그렇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싱글일 때는 알수 없던 수많은 감정들이 생겨났다. 이것을 ‘제3의 감정’이라 부르겠다. 나를 진정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하루의 감정 이야기를 담았다. 육아일기 같지만, 그 이면에는 부모가 되는 과정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행복에 대한 치열한 고민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배경은 오로지 ‘식탁’이다.


자신의 삶이 힘들 때 오히려 가장 행복한 그림을 그리는 르누아르처럼, 어쩌면 이 책은 화려한 식탁에서 따뜻한 음식의 온기를 느끼며 그날의 감정들을 다독이고 싶은 나의 바람이 담겨있는지도 모르겠다.



“식탁 위 어른의 감정,

음식 그 이상의 모든 맛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행복다짐02.jpg


2020년 10월 27일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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