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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스트 Dec 26. 2020

나무의 시간

존 에블린은 “모든 물질문화는 나무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인류의 문명과 문화는 나무를 떼 놓고 말할 수 없다. 저자는 나무를 소재로 톨스토이의 소설과 고흐의 그림, 박경리 선생이 글을 쓰던 느티나무 좌탁 앞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내촌 목공소의 김민식님의 나무 인문학을 읽고 책의 일부를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나의 생각과 경험들도 나열해 본다.


주위에 공기처럼 늘 널려 있어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나무에 대해 생각하고 배울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자작나무는 어둠 속에서 빛난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는 내리던 기찻길 옆에서 자작나무가 끝없이 서있었다.   자작은 러시아와 핀란드의 국가 나무이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성, 일상생활과 풍습에 깊숙이 스며 있다.   자작나무 껍질은 종이 대용으로도 사용되었다.   


나의 브런치 필명은 미국 시인 프로스트이고 그의 작품 중 자작나무를 제일 좋아한다.  나무의 색과 가지의 생김새도 좋다. 내가 왜 자작나무를 왜 좋아했는지 이제야 설명이 되는 듯하다.  어둠을 비추고 추운 곳에서 자라나는 그 나무의 정신을 알고 나니 난 자작나무가 이 전보다 더욱 좋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인 잣나무의 영어 이름은 Korean Pine이다.  잣나무는 목재로도 한몫한다. 연하고 무늬도 아름다우면서 색도 좋고 트어짐이나 수축과 팽창이 적고 가벼워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목재로 취급된다.    


몇 년 전에 여름휴가로 가족들과 알래스카에 간 적이 있다.  한여름에 밤 12시까지 환했던 그곳의 신기한 날씨와 생전 처음 보는 빙하는 정말 경이로웠다.  그만큼 놀랍고 기이한 것은 몇 시간을 운전해도 끝없이 보이는 가문비나무였다.  소나무과에 속하는 가문비 나무은 알래스카에 다 모여있는 듯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바다처럼 그렇게 이어지고 이어졌다.   여행을 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했던 지라  추억할 수 있는 곳이 많아 다행이다.   

알래스카의 가문비나무


박물관, 기념관 또는 호텔에서 작가들의 책상은 원목으로 제작된 것이 많다.  작가들이 사용했던 책상과 의자를 마주하면 글에서 받은 느낌 이상의 친근한 감동이 있다.  작가 박경리 선생님은 느티나무 원목으로 교자상에서  토지 3, 4부를 쓰셨다.  그가 살던 집의 뜰에는 느티나무 세 구루가 있었는 그중 한구루는 100년은 넘은 같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1시간 정도 해변가로 가면  Salinas Valley라는 곳을 만날 수 있다. 그곳은  유명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이 태어나고 작품 활동을 한 곳이다.  16년 전이었을까?   관광지로 유명한 카멜로 향해 가던 중 우연히  들린 셀리 나스의  존 스타인벡의 생가 박물관은 작은 선물 같았다.  그가 쓰던 책상과 의자 작품들을 둘러보았던 그날이 생각났다.



과실을 맺는 모든 나무는 단단하지만 작고 비틀어져 제목으로 사용하기는커녕 구하기도 힘들다. 에르메스의 가구는 가구 제작에 사용한 나무만으로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여성들의 워너비 명품 중의 하나는 단언컨대 에르메스가 포함될 것이다.  명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가구를 만드는 것을 난 이 책으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제작이 힘들다는 과일나무를 사용한 이유가 무척 궁금해진다.  워낙 고가라서 에르메스 가구는 아니더라도 손수건 하나 소장하지 않는 나로선 그저 딴 사람 예기처럼 들린다.   

몇 년 전에 다녔던 회사의 로비에 창업자가 직접 주문한 베르사체 소파가 떠오른다.  로비에 양쪽으로 하나씩 자리 잡고 있었던 큰 의자의 자태는 창업자의 모습과 닮은 아우라가 있다.  Public 회사면 창업자도 쫓겨날 수 있는 기업문화가 바로 미국이다.  왕이 쓰러지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나로선 언젠가 책에 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 이 있다.  창업자가 회사 밖으로 나간 몇 달 후   상징 같았던 베르사체 소파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 의자는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았다는 슬픈 현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나무를 심는다. 산업 폐기물로 가득 테니사 섬에 100그루 나무를 심어 자연을 살리고 아와지 유메 부타이  리조트를 지을 때도 먼저 50그루의 나무를 심고 건축을 시작했다.  “ 우리는 지금 지역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고 나라가 분열되고 있다. 마음에 아름 다운  풍경 하나를 간직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그래서 건축과 특정 장소에는 특히 나무가 필요하다”  


나무 심기를 통해 인간의 선한 관계를 회복해 보자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외침을 응원한다.  특히 환경 파괴가 주요 요인으로 창궐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잊지 못할 2020년은 안도 선생의  나무 심기 전도가 더욱 의미가 있다.   


예로부터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는다고 했다. 딸이 결혼할 오동나무로 장하나 보내기 위해서다.  가야금과 거문고도 오동나무로 만든다.  상상의 새인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앉는다고 한다.

전주시 노송동에는 6.25 전쟁이 이후 형성된 집창 존이 있는데 이른바 선미촌이다. 지금은 시민들의 공원으로 바꾸기 위해 선미촌 재생사업에 착수했는데 김승수 시장이 처음 목격한 것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오동나무였다고 한다. 집창촌의 딸들과 우뚝 있는 오동나무 광경을 보고 전주 시장의 가슴이 무너졌다고 한다.

  

딸이 시집갈 때 장롱을 마련해 주기 위해 심었던 오동나무가 성매매업소 마당에서 오동나무가 많이 발견돼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나무의 큰 잎으로 모자이크 처리로 쓰기 위해 그곳에 많이 쓰인 것이 오동나무가 아니었을까?  문화 행사 중 목공예를 다루는 수업에서는 의미를 더하기 위해 업소 마당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오동나무를 가지고 진행됐다고 한다.  오동나무는 딸을 시집보내려는 아름다운 마음에 쓰였기도 했고 가슴 아픈 과거의 모습을 가릴 때도 쓰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것을 인정하고 보듬고자 시행한 문화행사에서 목공예로 쓰였다는 오동나무의 해피 엔딩 스토리가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한다.    


이 책을 읽고 첫 번째 내가 한일은 나무 책상을 주문한 것이다.  3월 부터 시직된 자택 근무로 인해 급하게 쓰기 시작했던 하얀 플라스틱 테이블을 버리고 나무로 바꿔보자는 생각에.    


합성 나무지만 주문한 책상을 설레는 맘으로 기다린다. 그리고 그 책상에서 많은 글을 쓰고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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