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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흑곰 Feb 25. 2024

예상할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

아빠의 DNA를 물려 받아 생기는 일들 : 1.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느낌에 눈을 떴다.

그 느낌이라는 것이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 좋은 것이 아닌, 제법 저릿하고 찌릿하면서 묵직하고 징징대는 기분 나쁜 고통이었다. 이게 뭐지 여기가 왜 아프지 하고 잠결에 손으로 고통이 넘실대는 곳을 찾으니 왼 발, 무지외반증이라 불리는 툭 불거진 뼈 부분에 지금까지 살면서 본 물집 중 가장 큰 물집이 나 있었다. 아직 잠이 완전히 깨기 전이라, 내가 어제 많이 걸었던가? 새 신발을 신었던가? 하며 가물거리는 아득함에 다시 잠에 들었다. 

몇 분 지나지 않은 듯한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반 년 넘게 새 신발을 산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다. 일주일에도 수 회씩 신던 신발을 어제도 신었을을 기억해 냈따. 특별히 뛴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물집이 잡혔네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니 이제 잠이 스을 달아다는게 느껴졌다. 그 순간 통증이 조금 더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통증을 잊어보려고 이리 저리 뒤척이는데 아무래도 뭉근한 찌릿찌릿 저릿함이 나아지지가 않아 일어나 살펴 보니,

"아이고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아빠의 40대

아빠는 내가 20대 초중반 무렵부터 시시때때로 발을 붙들고 아프다며 고통스러워 하셨다. 고등어, 육류, 우유, 홍삼 모두 드시지 못한다며 음식을 가리는 모습도 안타까웠지만, 무엇보다 업무상 혹은 취향상 좋아하는 술을 자제하는 모습은 안타깝기도, 간혹 꼬숩기도 했다. 

허나, 그 누구보다 늘씬한 몸매에 매일매일 근력운동을 하는 루틴에도 불구하고 요산수치가 높아 발을 쥐고 동동 구르는 모습은 생경하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내가 20대 부터 짧은 다리가 도드라지는 것을 극복하고자 제법 굽 높은 신발을 신기야 했다지만, 애초부터 나고난 무지외반증을 물려준 장본인이 아빠인 것을 고려할 때 모든 것이 '이상해' 보이는 화면의 연속이었다. 나보다도 더 툭 튀어나온 왼발 오른발 엄지발가락 옆 부분의 발에 또 다른 엄지발가락이 있는 것 처럼 툭 불거진 무지외반증은 할머니-아빠-나 로 유전되었는데 그동안은 유전이 무섭네 정도로 아빠를 바라보는데 그쳤었다. 


무지외반증과 물집, 그리고 통풍



위 그림이 공교롭게도 지금 나의 상황과 너무 맞아 떨어지는데, 왼발의 저 뼈 부분이 나는 매우 툭 불거졌다. 그리고 가운데 동그라미 안에 빨갛게 부운 부분에 극심한 물집이 잡혀있고 그 물집을 감싸는 빨간 테까지 생겼다. 아빠는 통풍이 바늘 수개로 한꺼번에 쿡쿡 쑤시는 고통이라며, 너는 그 고통이 아니니 통풍만은 아닐것이라며 이 상황을 부인하고 싶어하셨다. 


일단 병원에 가봐야 아는거지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아빠는 계속,

그정도로 아픈건 통풍이 아니야 너무 아파서 걸을 수 조차 없어. 

라고 하시기에,

아빠, 저는 통증에 둔감해서 아이도 생짜로 낳았고(무통주사니 뭐니 없이, 13시간 진통 후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보통 늘 다 아프고 병원에 가잖아요. (이보다 더 한 괌 사건도 있는데 이건 언제 한 번 다른 글로 풀어보자...). 라고 했더니 전화 너머 침묵..


병원에 가니 통풍일 가능성이 높아보이니 피검사를 해보자 하여 금요일 피를 한무더기 뽑고 집으로 돌아왔다. 묵묵하고 먹먹한 통증은 오, 생각보다 오래 강하게 가는데 약을 먹어도 통증이 가라 앉지 않아 금요일은 한 번만 먹으면 된다는 약을 두 번 먹었다. 

내가 이정도 아프면 아프긴 아픈건가보다.. 


세월속에 모래산의 위치가 바뀌고 바람은 또 불고 또 다른 모래산이 생긴다. 

아빠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삶을 보며 괜시리 숙연한 맘이 든다. 

나를 보며 아빠는 어떤 생각을 하실까,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천식 뿐일까. 

나의 안녕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빠의 안녕을 위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간절히 바라는 맘이다. 


이 참에 아빠를 닮아 생기는 일 시리즈를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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