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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go Aug 02. 2024

정신과 약에 대해 꼭 알아야 할 점

정신과는 처음인데요;; #10




  

정신과 치료는 대부분 약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약을 꼬박꼬박 먹어야 할까요?     


앞서 말했듯이 정신질환은 뇌의 병입니다.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하면 정신력으로 어떻게 해보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고혈압이나 당뇨를 정신력으로 치료하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병을 치료하는 데 인지행동치료, 대인관계치료 및 생활리듬 치료, 광치료, 가족 치료, 질병교육, 정신치료 등이 시도되지만 가장 우수한 치료는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약물치료입니다. 약물 치료를 기반으로 다른 여러 치료방법들을 병행하는 것이 현명하죠. 약물치료 없이 다른 치료만으로는 치료가 어렵다고도 합니다. 치료 전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가장 일반적인 치료 전략은 바로 약물 치료를 기본으로 개인에게 적합한 치료 방법을 함께 하는 것이 최적의 방법입니다.  

   

약을 먹는 이유를 뇌과학적으로, 비유로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약을 먹는다는 건 길을 만드는 겁니다. 뇌 속에는 신경전달물질이 다니는 길이 있고 정신질환자, 즉 당사자의 길은 폭발하기 쉬운 길입니다. 신경전달물질들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 길을 다 헤집고 난장판으로 만들고 잘못된 길을 타고 가서 파괴적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엉망진창인 이 길을 재건해 잘못된 곳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벽을 쌓고 신경전달물질이 늘 안정적으로 흐르도록 신호등을 설치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터를 닦고 여러 번 다져서 제대로 된 길을 탄탄하게 만들어야 하죠. 약은 바리케이드입니다. 새로운 길이 완성될 때까지 강제로 방향을 잡습니다.      


그런데 약을 복용하다 보면 이미 길이 완성되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증상이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길이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바리케이드를 치워버리면 그동안 공든 탑이 무너져내립니다. 무너진 잔해를 치우고 길을 다시 놓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삽화가 반복될수록 치료가 잘되지 않고 더 오래 약을 먹어야 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죠. 


길이 무너지고 신경전달물질이 폭주하는 일이 반복되면 재건은 더 어려워집니다. 새로 만든 길이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잘못된 길이 자꾸만 더 튼튼하게 다져지기 때문입니다. 심하면 약을 평생 먹어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고혈압약, 당뇨약과 비슷하게 정신과 약은 증상을 완화시킬 뿐 원인을 찾아내 없애는 약은 아닙니다. 애초에 그럼 약을 먹지 말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약을 끊으면 평형을 잃은 부분을 보완해줄 수 없게 되어 다시 증상이 나타납니다. 


안경 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세요. 눈이 안 좋아 안경을 몇 개월 쓴다고 해서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진 않습니다. 안경을 쓰면 사물이 뚜렷하게 잘 보이지만 벗으면 다시 흐릿하게 잘 안 보이죠. 벗으면 잘 안 보인다고 안경을 버릴 것입니까? 아니죠! 안경의 목적은 나빠진 시력을 보완하여 잘 보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의미 있습니다. 시력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요.     


그런데 약물치료를 하려는 데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어디서 정신건강의학과 약은 중독이 된다는 말도 들었고,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많이 먹으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말도 들었기 때문이죠. 치료의 가장 핵심이 되는 약물 치료에 대한 오해가 참 많은데 이는 약물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불합리한 사회적인 편견의 영향이 큽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시건강의학과 약물 치료의 역사는 50년 남짓으로 최근 사용하고 있는 정신의학과 약물은 최근 10년 내에 개발한 따끈따끈한 약물입니다. 따라서 예전의 부작용은 최근 개발된 약물에서 대부분 해결되었고 효과와 안정성도 입증되어 있습니다. 잘못된 오해를 벗어던지시고 치료를 확실히 받으시길 바랍니다.     


사실 모든 약물은 부작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감기로 골골거릴 때 먹는 타이레놀도 부작용이 있는걸요 뭐. 그런 일반적인 약을 사도 박스 안에 약을 설명하는 약전이 첨부되어 있고 자세히 보면 정말 많은 부작용이 적혀 있습니다. 빈도가 1% 미만이더라도 부작용은 반드시 다 기재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작용이 다 생긴다면 정말 큰일이 나겠다 싶을 정도로요.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전문가인 의사선생님이 계시잖아요? 그분들이 알려주시는 대로, 즉 용법에 따라 잘 쓴다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약의 부작용 때문에 치료를 놓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설사 약물 부작용이 있는 경우에도 대부분은 큰 문제가 안 되는 부작용입니다. 치명적이고 생명에 위협을 주는 부작용이 있으면 약의 시판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항암치료처럼 낫기 어려운 병의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감수하며 약물을 씁니다. 하지만 정신과 약은 다릅니다. 문제가 될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면 의사가 그 부작용을 설명해주고 주의사항도 알려줄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내과나 외과의 약과 다른 점이 없습니다. 위장약이나 당뇨약보다 더 위험한 약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도 압니다. 처음에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하면 적응하는 기간 동안 많은 고생을 합니다. 전 잠이 기절할 것같이 쏟아지고, 안절부절 못해서 TV를 10분 이상 못 볼 정도였으니까요. 정신과 약은 효과는 늦고 부작용은 빠릅니다. 부작용을 어느 정도 견뎌내야 효능을 볼 수 있어요. 


또한 부작용을 겪을 때 대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부작용을 감소시키는 약을 함께 복용하는 것, 기간을 정해두고 부작용을 견뎌보는 것, 약을 줄이거나 교체하는 것입니다. 전문가와 함께 부작용의 고난을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사용되는 약물이 중독성이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참 많은데요. 많은 정신과 약물들 중 신경안정제로 불리는 약물이 약간의 약물 의존성이 있답니다. 하지만 모든 정신과 약이 다 그렇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정신과 약은 대부분 전혀 중독성이 없습니다. 신경안정제도 사실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약물의 의존성이 그닥 없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도 의사의 처방에 잘 따르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살이 너무 찌고, 여드름이 생기고, 무기력해지고, 변비가 생기고, 멍하고 졸리고, 효과가 그닥 없는 것 같고, 요즘은 괜찮아서 약을 중단하는 분들이 가끔 계십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혹은 잘못된 방식으로 약을 중단하거나 줄이면 일부 약물의 금단 증상이나 증상 재발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안감이 증폭, 우울증이 심화되고 잦은 기분변화를 겪을 수 있고 짜증과 신경질이 나고 초조, 안절부절못하며 자살충동과 불면증에 시달릴 수 있고 현기증이 나며 전기충격의 느낌이 들고 피로감이 쌓이고 독감과 유사 증상이 나타나고 두통, 근육경련, 메스꺼움, 떨림, 구토를 경험하는 등 약을 중단하면 발생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약을 줄이고 중단하는 것은 전문가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단계적으로 줄여나가야 해요. 시간을 오래 잡고 한 번에 한 가지 약만 끊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자, 이제 약을 왜 꼬박꼬박 잘 먹어야 하는지 아시겠죠? 약이 정말 약이 되기 위해서는 의사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선생님을 신뢰하면서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합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 더딘 효과, 부작용 때문에 섣불리 약을 중단하거나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게 두려워지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약을 잘 먹겠다고 결심했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약은 언제까지 먹어야 할까요? 뇌 속의 불균형을 바로 잡고 반응성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몇 개월 약을 먹기도 하고 어떤 분은 수개월에서 평생까지도 약을 복용할 수 있죠. 


자꾸 평생 약을 먹어야 될 수 있다고 제가 협박하는데, 사실 저는 약을 평생 먹는 거는 걱정이 안 됩니다. 임신 때 약을 중단하는 건 염려가 되긴 하지만요. 약을 평생 먹어도 재발되지 않고 잘 회복한다면 그까짓 아침, 저녁에 약을 먹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증상이 갑자기 확 일어났을 때 이를 빠르게 가라앉히는 치료는 급성기 치료, 급성기가 지난 뒤 꾸준한 복약으로 안정을 취해 재발을 방지하는 치료를 유지 치료라고 합니다. 급성기 치료는 일단 바리케이드를 세워 길을 막고, 유지치료는 새 길을 만들어 개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급성기 치료라서 뭔가 빨리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정신과 약은 뇌라는 섬세한 기관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효과가 나타나는 데 평균 4~6주가 걸립니다. 입원했을 때 여러 시도를 해서 자신에게 알맞은 약을 찾아가죠. 일찍 치료를 시작하고 충분한 기간만큼 약물치료를 유지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가장 빨리 약과 작별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약을 먹는다는 사실에 우울감이나 수치심에 빠지지 않고 내 몸에 새롭고 건강한 길을 만들고 있다고 상상하세요.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성급한 부실 공사는 현실에서도, 별로 좋은 결과를 낳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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